[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8년 7월 23일 오전 9시 38분께 서울 중구 신당동 N아파트 1층 현관 앞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쓰러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다. 이곳은 노 의원의 동생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이다. 투신 장소로 보이는 17~18층 사이 계단에서 고인의 유물과 유서가 발견되었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대표는 필명 드루킹인 김동원)로부터 모두 4000만 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중략)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고인이 정의당 앞으로 보낸 유서이다. 당시 정국은 드루킹 사건으로 시끌벅적했다. 김동원의 경공모 회원들이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인터넷 댓글을 조작했고, 선거 이후 문 대통령 및 민주당에게 보답 차원의 인사 청탁을 했지만 거절당하였다.

문재인 및 민주당은 드루킹이 자발적으로 댓글을 단 뒤 거기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청탁 자체가 불법인 데다 보답을 요구하는 것 역시 황당했던 것. 거절에 분노한 드루킹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문재인 정부를 비방하는 여론 조작을 펼쳤고, 이에 민주당이 드루킹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건의 본질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드루킹과 공모했는가, 그렇지 않은 거였지만 검찰의 수사는 엉뚱하게도 고인에게로 향해 불법 정치 자금 수수 의혹으로 발전하였고, 결국 대한민국은 훌륭한 인재 한 명을 잃게 되었다. ‘노회찬6411’(민환기 감독)은 고인의 족적을 회상하고 영향을 짚어 가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서울 구로동에서 개포동까지 운행하는 6411 지선 버스가 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 3시~5시께 구로동 쪽에서부터 수많은 미화원과 경비원 등의 노동자들이 승차한다. 강남의 빌딩 숲으로 일하러 가기 위해서이다.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 6411 버스를 거론했고, 그 후 이 버스는 ‘노회찬 버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대선 후보 경선 중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시 “잘못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라고 논평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분통을 자아낸 바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소한 수백억 원의 뇌물 수수 및 공금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법상 고인에게 분명히 잘못은 있다. 유서에도 적혀 있듯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었다. 불찰 혹은 부지불식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요즘 정서로 볼 때 자살은 옳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를 인식론적 시점에서 고찰해 보자. 고인의 인식론적 생철학은 청렴과 정직, 그리고 정의였다.

그런데 일시적 판단 착오로 인해 4000만 원이라는 ‘정치 자금’을 현행법의 절차를 밟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그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지지자, 정의당, 가족 등에게 송구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재판을 받고 죗값을 치렀다면 정치적 선전으로 이미지를 회복하고, 정치인으로서 재기할 수도 있었다.

100보 양보해 정치계를 떠날지라도 자신의 유명세로 얼마든지 먹고살 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양심과 그의 생철학은 죄악감을 조작할 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최소한 그의 실존주의적 측면에서 그런 상황에서의 실존은 실존이 아니었다.

고인은 위장 취업을 통해 진보적인 노동 운동가로서의 첫발을 내딛지만 결코 편향되지도, 이익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가 원한 건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다수의 노동자들의 정당한 대우가 보장되는 사회, 장애인과 여성을 배려하는 사회였다. 그의 ‘투명인간론’에 따르면 장애인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은 모두 권력자, 자본가 등의 시선에 비춰 볼 때 상대적인 투명 인간이었다.

월급 85만 원을 벌기 위해 새벽 3시에 6411 버스에 올라타는 고령의 미화원을 정치인이나 재벌이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투명 인간이니까. 고인은 평소 첼로를 연주하고는 했다. 그의 정치 테제 중 하나는 ‘전 국민이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회’였다. 음악은 곧 여유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음악은 조화로운 성격을 형성해 준다.”라며 음악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정당의 목적은 집권인데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정당은 집권을 곧 집단 이기주의와 연결했다. 고인이 몸담았던 진보 정당 중 일부 역시 그런 성향을 보였기에 그가 떠나고는 했던 것이다.

고인은 ‘정치인이 공약을 지키는 정치’를 지향했다. 그리고 몸소 실천했다. 프로파간다와 데마고기가 판을 치는 이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 그는 에토스적이기보다는 파토스적이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답지 않게 그런 낭만주의가 넘치고, 곳곳에서 ‘키득키득’ 웃음이 흘러나오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제주도 최초로 여성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만 32살 고은영을 그린 다큐멘터리 ‘청춘 선거’(지난 6월 개봉)로 만만치 않은 솜씨를 보여 준 민 감독의 재주 덕분에 이 영화는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보편타당성을 보여 주며, 설득하려 하지 않는 감동을 안겨 준다.

대부분의 노동 운동가가 ‘운동’을 위해 위장 취업했지만 노동을 하고 싶어서 위장 취업한 노회찬. 대부분의 정치인이 집단 이득을 위해 집권을 노리지만 변혁을 위해 정치에 뛰어든 노회찬. “인간 구실을 하며 살 수 있게만 해 주세요.”라며 손을 잡던 한 유권자의 당부가 바로 고인이 꿈꾸던 세상이었다. 손수건 필수. 내달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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