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주필의 가족남녀M&B] 여성이, 내 딸이, 운동을 하고 싶다고, 아니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해도 괜찮을까? 체조, 피겨스케이팅,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처럼 ‘우아해 보이는’ 운동 말고 체력 소모가 크거나 신체 접촉이 많은 운동을 해도 좋을까? 여성 선수들이 남성과 달리 유독 노출이 심한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방송에서는 왜 ‘미녀 선수’라는 표현을 자주 쓸까? 스포츠에는 성차별이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과 관련해 여성과 스포츠를 주제로 다룬 영화들이 꽤 있다. 아직도 명예살인이 연간 1천 건 정도씩 발생하는 인도에서 아버지가 딸을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로 키운 ‘당갈’, 남자들뿐인 고등학교 야구팀에서 '천재 야구소녀'로 불리며 투수로 활약하다가 졸업 후 프로팀의 벽에 막히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야구소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신설된 여자 프로야구를 통해 여성들 사이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그들만의 리그’(1992), 여자 테니스 챔피언 빌리 진 킹이 전 윌블던 챔피언인 노장 바비 릭스와 세기적 테니스 성 대결을 벌여 승리한 내용을 다룬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2017) 등등. 이들 영화는 모두 실화를 소재로 한다.

▲ 영화 ‘당갈’과 ‘야구소녀’ 포스터.

영화 ‘당갈’에서 레슬링 국내 챔피언이었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은 자신이 따내지 못한 국제대회 금메달을 아들을 통해 얻고 싶다. 그러나 딸만 넷이 태어나면서 그 꿈도 물거품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기타(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둘째 바비타(산야 말호트라)가 자신을 괴롭히던 또래 남자아이들을 응징하는 모습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레슬링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두 딸은 레슬링이 싫었지만 14살에 결혼하는 친구에게서 놀라운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꾼다. “인도에서 딸은 치워질 뿐이야. 14살이 되면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서 애 낳고 사는 거야. 너희 아빠는 너희를 시집가서 애나 낳으라는 짐짝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자식으로 여기는 거야. 너희 아빠는 세상과 싸우고 있는 거야. 나도 그런 아빠가 있으면 좋겠어.”

곱지 않은 시선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두 딸은 아버지의 훈련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며 잇따라 국내 챔피언이 된 데 이어, 큰딸은 슬럼프를 딛고 일어나 마침내 영연방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룬다. 아버지는 결승을 앞두고 큰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승리는 너만의 것이 아니고 여성은 열등하다는 인도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며 인도의 여자아이들의 인권의 승리다.” 아버지는 또 딸들에게 “우리 딸들은 멋진 여자가 돼서 결혼할 남자를 직접 고르게 될 거야.”라고 강조한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여성들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악습이 있다. 이른바 명예살인이다. 가족이 좋아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서, 정략결혼을 거부해서, 심지어 성폭력을 당해서 등 이유도 다양하다.

영화 ‘야구소녀’에서 ‘주수인’(이주영)은 고교 야구팀에서 최고구속 134km와 공 회전력으로 주목받았던 유일한 여자 선수다. 고교 졸업 후 프로팀 선수로 야구를 계속하는 것이 꿈이지만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수인의 공 속도가 여자로서는 놀랍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기도 하고, 여자가 무슨 야구냐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꿈을 포기하라고 할 때 수인은 “저는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라며 좌절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나의 미래를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는데….”

실존 인물인 안향미 선수는 1997년 한국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덕수정보고) 야구부에 입학했다. 99년 대통령배대회 준결승에서 선발투수로 등판, 데드볼로 출루시킨 후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첫 공식경기 기록을 남겼다.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갖췄지만 기숙사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이유로 입단을 거부당했다.

▲ 영화 ‘그들만의 리그’ 스틸컷

전미 여자 프로야구연맹은 1943년 창설돼 12년간 야구사에 남았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명 남자 선수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자 위기에 빠진 프로야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눈요깃감’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몸을 날리며 남자 선수들 못지않게 열심히 훈련과 경기에 임했다. 영화 ‘그들만의 리그’에서 여자 프로야구 선수들의 유니폼은 짧은 치마다. 강요에 의해 차밍스쿨에도 다닌다. 선수 이전에 숙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도쿄올림픽에서는 체조와 비치발리볼 등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노출이 심한 유니폼을 거부한 사례들이 나타났다. 여성에게 ‘미녀 선수’ 운운하다 지적받은 방송 사례도 일부 있다. 스포츠에서도 여성을 성적 대상이 아닌 선수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

▲ 영화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 스틸컷

영화 ‘빌리진 킹’의 배경 시기는 1973년, 그가 전성기를 누릴 때다. 신설 테니스대회 우승상금으로 남자는 여자의 8배인 1만2천달러를 받게 됐다. 킹은 “오늘 여자 결승 티켓이 남자와 똑같이 팔렸다.”며 남녀 상금이 같아야 한다고 외친다. 남자 테니스협회장은 “남녀에게 똑같이 주는 건 말이 안된다.”며 이유로 남자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남자 경기는 더 흥미진진하고 빠르고 강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여자 선수들은 대회를 보이콧하고 여자테니스협회를 창설한다. 29세의 킹은 과거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남성우월주의자인 시니어 챔피언 55세 바비 릭스와 우여곡절 끝에 세기적 성 대결을 펼친다. 양측이 내거는 명분은 여권 신장을 위해와 여자의 열등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릭스는 “나도 여자 좋아한다, 침실과 부엌에 있을 때. 하지만 요즘 여자들은 안 끼는 데가 없다. 여성해방운동 막아야 한다.”고 우쭐댄다. 결과는 킹의 완벽한 승리.

그 후 세상이 달라졌다. 이 성 대결을 계기로 73년 전미오픈을 시작으로 2007년 윔블던까지 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의 남녀 상금은 똑같아졌다. 2017년 BBC 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 44개 종목 중 유도 육상 사이클 탁구 태권도 카누 승마 양궁 다이빙 수영 배구 스케이팅 등 국제대회 우승상금 남녀 동일 종목이 35개다. 축구 골프 크리켓 등은 아직도 상금 격차가 크다.

한편 호주 오픈 테니스 결승을 예로 들어 남자는 5세트 중 3세트, 여자는 3세트 중 2세트를 먼저 이기면 되는 경기여서 남자 우승자가 여자 우승자보다 평균 1시간 이상 더 뛰기 때문에 남녀 우승상금이 같으면 시간당 우승상금은 남자가 더 적다는 등 역차별 반론도 있다.

연봉과 관련, 세계적인 여자 배구 스타 김연경 선수는 팀 내 선수들의 연봉 총액 상한선인 샐러리 캡이 “여자 14억(향후 2년간 동결), 남자 25억(1년에 1억원씩 인상), 너무 차이 난다.”고 SNS에서 푸념했다.

여성과 남성 스포츠의 상금과 연봉 등의 적정선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 경찰대의 남녀 체력장 기준을 세우는 것처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자 또는 남자라는 이유로 운동을 하고 싶어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을 개선하는 일이다. 그래야 성별에 관계없이 선수층도 두터워지고, 기량도 향상되고, 선택할 수 있는 팀도 많아지고, 관객도 늘어난다. 스포츠에서도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성차별이 사라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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