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상징 예술이 바로 오페라이다. 오페라를 즐기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역사와 이해도가 있어야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입장료가 다른 것보다 고가라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오페라(opera)’ 혹은 가극은 음악이 주가되어 이끌어 가는 연극의 일종이다. 그래서 모든 예술, 즉 언어, 시각, 음악예술이 종합적으로 혼합된 예술장르이다. 바그너의 오페라처럼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거나 음악의 중간에 대사 비슷한 레치타티보(서창)나 일반 대사가 들어가기도 한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보자. 오페라의 기원은 중세 예배극까지 올라간다. 이 전통 형식은 16세기 피렌체에서 그리스 고전비극에 대한 당시의 개념과 결합되었다. 초기 오페라 작곡가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소재를 찾았으나, 몬테베르디는 ‘포페아의 대관식 L'incoronazione di Poppea’에서 로마의 실제 인물 네로와 포페아를 다루었다.

루이 14세 때는 륄리의 호화 작품이 오페라 발달을 촉진시켰다. 18세기 중엽 런던에서 대중화된 오페라는 헨델이 이탈리아 형식을 우아하게 정리한 것으로 그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형식화한 스카를라티의 오페라 양식에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라모가 대사를 강조하며 형식을 더 유연하게 한 대규모 발레 막간극으로 오페라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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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보다 세속적 희가극이 나타났는데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는 사회와 정치의 풍자로 영국에서 공연되고 함부르크에서는 평범한 일상을 다룬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가수에 의존하던 형식에서 극자체 중심의 오페라로 개혁한 글루크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feo ed Eurydice’ 등은 새로운 것으로 고전적 효과와 비극적 정서를 보여주는 예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 Don Giovanni’ 등에서 이전 작곡가들의 특성과 희가극을 결합시켜 앙상블 피날레를 극 진행의 중요 수단으로 썼고, 앙상블 피날레에 교향곡 형식을 도입했다. 케루비나와 스폰티니는 향후 새로운 정가극(opera seria)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베토벤에게 영향을 주어 ‘피델리오 Fidelio’가 탄생했다. 로시니의 후기 오페라는 장중하고 낭만적인 양식으로 마이어베어에 이르러 더 웅장해졌다.

19세기 오페라는 국민주의적 성향으로 발전했다. 독일에서는 베버의 낭만적 오페라 ‘마탄의 사수 Der Freis-chütz’와 마르슈너의 오페라가 오페라의 거장 바그너에 영향을 주었다. 바그너의 대표작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등은 오늘날에도 최고로 여겨진다. 러시아 등의 오페라는 민족주의 영향을 받았는데 글린카의 독창적인 오페라는 차이코프스키와 무소르크스키에 이르러 성격이 아주 다른 형태의 오페라로 발전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체코에서는 스메타나의 애국적 작품에 이어 드보르자크의 한층 서정적인 오페라가 나타났고 20세기에는 야나체크의 사실주의 오페라가 점점 주목을 받았다. 라벨은 황홀한 단막 오페라 2편을 작곡했다.

이 역사적으로도 복잡하고 이해하는데도 어려운 예술형식인 ‘오페라(opera)’는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

‘opera’는 라틴어 ‘opera’에서 온 이탈리아어 ‘opera(작품)’가 최종 정착한 단어로 ‘opus(작품)’의 복수형이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이탈리아어 ‘opera’는 1639년 시, 무용, 음악이 결합된 작품이란 의미로 처음 사용이 되었고 영어에서는 1648년 이 의미로 처음 기록이 되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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