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담보’(강대규 감독, 2020)는 관객들을 울려 보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최루 영화이다.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열을 올리는데 의외로 어린 승이 역의 박소이(9)의 뛰어난 연기력과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의 귀여운 매력이 이 작품 속에 푹 빠지도록 만든다.

1993년 인천. 중년의 두석(성동일)은 사채업을 하는 친구의 못 받은 돈을 대신 받아주는 일을 동거인 종배(김희원)와 함께 하고 있다. 3달째 이자가 밀린 조선족 명자(김윤진)를 길거리에서 마주친 두석은 그녀의 9살 딸 승이를 강제로 빼앗으며 담보로 잡고, 내일까지 밀린 돈을 갚으라고 엄포를 놓는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돈을 빌리고자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던 그녀는 경찰에게 붙잡힌다. 불법 체류자였던 것. 그렇게 그녀는 중국으로 강제 소환되면서 두석에게 부산에 승이의 큰아버지가 있으니 그에게 연락을 취하면 돈도 갚고, 승이도 좋은 데 입양시킬 것이라며 무선 호출기 번호를 가르쳐 준다.

승이의 큰아버지라는 병달이 나타나 명자의 빚을 갚고 승이를 데려간다. 두석은 승이가 보고 싶은 데다 왠지 병달이 미심쩍어 그의 집에 전화를 걸지만 통화가 안 되자 직접 그를 만나 어디론가 팔아넘겼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두석은 승이에게 준 명자의 무선 호출기에 집 전화번호를 알리는 녹음을 한다.

드디어 승이의 전화가 걸려 오고, 두석은 종배와 함께 밤을 새워 부산으로 차를 몰고 가 승이를 구출해 온다. 두석은 승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호적이 입적시키고, 명석한 승이(하지원)는 전교 1등을 달리며 명문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명자 엄마(나문희)가 명자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전화를 거는데.

두석은 원래 피도 눈물도 없는 ‘해결사’였다. 빚진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것에만 몰두하던 냉혈한이었다. 오죽하면 9살 승이를 담보라며 납치했을까? 하지만 본심은 착한 사람이었다. 배운 것 없고, ‘빽’도 없기에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한 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승이의 순수한 세계를 접하고는 점차 빠져들어 간다. 내재되어 있던 선한 본성이 되살아났고, 억제했던 정이 분출되기 시작했고, 비록 직접 낳은 자식은 없었지만 후성규칙으로 물려받은 부성애가 무차별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자신을 피도 눈물도 없는 ‘해결사’로 본 게 아니라 가족으로 받아들인 승이의 동심의 세계였다.

이 영화는 국내 최고의 중국어 통역사로 성공한 승이가 10여 년 전 갑자기 사라진 두석을 찾기 위해 종배와 함께 눈물겨운 노력을 쏟아온 현재로 시작해 과거의 사연을 찬찬히 훑어 간 뒤 결국 찾아내고 만다는 결론의 수미상관으로 펼쳐진다. 그 모든 기승전결이 눈물을 야기하고 감동을 자아낸다.

명자는 죽기 전 두석에게 “친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걸 승이에게 전해 달라.”라고 부탁한다. 결국 두석은 친부를 찾아내고 승이를 그 앞에 데려다준 뒤 자리를 피한다. 이제 자신의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식으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해결사’가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던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이다. 묻는 건 ‘그 기준이 관념론이냐, 유물론이냐?’라는 것이다. 병달에게 큰돈을 지불하고 승이를 산 주인공은 부산 외진 곳에서 유흥 주점을 운영하는 정 마담. 학교에 보내 달라는 승이의 부탁을 거짓말로 무마하면서 주점 내의 각종 허드렛일을 시킨다.

비록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9살 어린아이인 데다 같은 여자로서, 정말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노동력 착취 및 학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그녀보다 더 악랄했던 두석이 그런 승이의 구원자로 나선다. 그는 정 마담이 병달에게 지불했다는 돈을 유일한 재산인 승용차를 팔아 갚아 준다.

그리고 각종 노동을 하며 승이를 가르친다. 자신처럼 못 배운 탓에 사회적 ‘루저’가 되지 말고 꼭 성공하라고. 승이는 두석의 호적에 입적되었지만 아저씨라고 부른다.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두석은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그게 불만이었던 듯하다. 승이를 친부에게 ‘인도’한 뒤 승이가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려왔으니 데려가라며 “아빠.”라고 부를 때 그가 눈물로 웃는 시퀀스가 그걸 증명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놓고 유물론보다 관념론을 우위에 둔다. 명자는 자신의 잘못과 무능으로 어린 승이가 혈혈단신 대한민국에서도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잡히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자신이 일찍 죽게 됨으로 인해 승이가 아파할까 봐 정을 떼려는 데 더 집중한다.

승이의 친부는 재혼을 해 자식을 갖고 있다. 승이가 두석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하는 것으로 미뤄 친부는 승이를 거둬 줄 형편이 안 된다고 내친 듯하다. 어쩌면 우물쭈물하는 친부를 승이가 거부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배려해서 자신이 스스로 친부 곁을 떠났거나.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의 이항대립이다. 과거에는 유물론이 대세였다. 피를 나눈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이기 때문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며 혈연관계가 그 어떤 연관보다 진하다고 명토 박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다. 부부가 가장 가까운 사이이되 헤어지면 가장 먼 사이가 되듯 혈연관계도 그런 식으로 변화했다.

정이라는 건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발생하는 것이고, 그 시간이 길고 사연이 깊어야 더욱 진해지는 것이다. 단순히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정이 넓고 깊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억지이고, 강요일 따름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가족을 규정한다. 함께 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 잠을 잔다는 게 그래서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고.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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