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중 마지막인 ‘스파이더맨 3’(2007)는 흥행 성적 459만여 명이 증명하는 재미를 넘어선 수작이다. 피터(토비 맥과이어)는 ‘절친’ 해리(제임스 프랭코)가 자신이 아버지(악당 그린 고블린)를 죽였다고 오해하고는 공격해 오자 반격하다 그에게 중상을 입힌다.

병원에서 깨어난 해리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으로 일부 기억을 잃고는 자신의 병석을 지킨 ‘절친’ 피터에게 고마워한다. 피터는 데일리 버글에서 프리랜서 사진 기자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데다 스파이더맨으로서 국민적 영웅이 되자 드디어 숙모의 반지를 물려받아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에게 프러포즈하려 한다.

메리 제인 역시 꿈에 그리던 브로드웨이 진출에 성공해 첫 무대를 갖지만, 다음날 모든 언론은 혹평을 하고, 극단은 그녀를 해고한다. 스파이더맨은 경감의 딸 그웬을 구해 준 공로로 광장에서 용감한 시민 상을 수상하는데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그녀와 키스를 한다. 해고된 데 속상하던 메리 제인은 그 광경에 완전히 낙담해 피터와 소원해진다.

피터의 삼촌 벤을 죽인 공범 플린트가 병든 딸 페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탈옥을 한다. 경찰에 쫓기던 그는 입자 물리학 실험소에 들어갔다가 실험에 희생되어 모래 인간으로 변신한다. 피터는 우주에서 떨어진 신비한 기생체 심비오트의 숙주가 되어 엄청난 힘을 얻고 매우 공격적인 성격으로 바뀐다.

기억을 되찾은 해리는 메리 제인을 이용해 피터에게 상처를 주고, 포악해진 피터는 그웬을 이용해 메리 제인에게 복수한다. 데일리 버글에 피터의 경쟁자로 에디가 입사해 스파이더맨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진을 합성해 게재한다. 피터가 편집장에게 조작임을 폭로하자 편집장은 에디를 해고한다.

피터가 심비오트의 폐해를 알고 천신만고 끝에 떼어 내자 그것은 에디에게 달라붙는다. 스파이더맨을 능가하는 힘을 얻게 된 에디는 플린트와 힘을 합쳐 스파이더맨을 죽임으로써 복수를 하고자 메리 제인을 납치하는데. 일단 ‘베놈’의 탄생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MCU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심비오트가 지구에 와서 첫 숙주로 삼은 인물이 바로 스파이더맨이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평소에는 평범한 직장인 피터이지만 거미 가면을 쓰면 국민적 영웅 스파이더맨이 된다. 피터일 때는 착하기 그지없고 스파이더맨일 경우 힘이 세지만 절대 사익을 추구하거나 살인은 하지 않는다.

두 얼굴이지만 사실은 한 얼굴이다. 인격적 본성은 전혀 변화가 없다. 그러나 심비오트의 침투로 인해 그는 두 가지 얼굴을 갖게 된다. 자신이 세상 모든 걸 다 가졌다는 자신감, 그걸 뽐내고 싶은 우월감과 허영심, 그래서 메리 제인 등 타인을 무시하거나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마음 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 양심은 남아 있다. 그에게서 이성이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심비오트로써 강력한 힘을 얻기는 했지만 자신의 심성이 악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것을 떼어 내는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키워드는 정체성, 이항대립, 선택, 그리고 복수심이다.

메리 제인은 용감한 시민 상 시상식에서 그웬과 키스할 때를 지적하며 “그때 스파이더맨이었어, 피터였어?”라고 묻는다. 또 심비오트에 의해 사악하게 변모한 피터를 보고 “너 누구야?”라고 질문한다. 스파이더맨이 삼촌 살인범 플린트를 죽였다고 말하는 피터에게 숙모는 “스파이더맨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라고 일갈한다.

거의 모든 가면 히어로 영화들이 내세우는 화두는 정체성 문제이다. 예비군복만 입으면 용감해져 평소라면 생각도 못 했을 과감한 일탈을 행하듯 가면은 그 뒤에 가려진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그건 비싼 새 양복이나 튼튼한 장갑을 착용했을 때, 혹은 높은 지위에 올라섰을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모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인간의 모든 성향과 행동 중에서 부정적인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선한 인물이었던 피터마저도 변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만사는 복잡다단하고, 이념은 변화무쌍하다. 그러니 그 천둥, 번개, 회오리 등이 몰아치는 바다 한복판에서 좌초하지 않도록 중심(목적론과 신념)을 잘 잡으라는 메시지이다.

스파이더맨과 베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항대립을 말한다. 이항대립은 이 세상을 설명하거나 사회의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쉬운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이다. 이항대립은 곧 ‘어떤 사물(존재)의 의미는 개별자로서가 아니라 체계적 전체 안에서의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라는 의미의 구조주의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샌드맨이나 베놈은 사회가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항대립에는 독단적인 언표라는 함정이 있다. 그래서 감독이 찾아낸 것은 바로 “사람은 어떤 내적 갈등 속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라는 대사에서 언표하는 선택이다. 선택은 주로 기독교 철학자들이 주창한 이념이다. 이는 곧 자신의 삶의 질과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이다.

사과를 따 먹으면 하느님에게 벌을 받을 줄 알았지만 벌을 받더라도 그 맛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과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통과 맞바꾸겠다는 선택. 해리는 아버지가 스파이더맨과 싸우는 과정은 못 본 채 마지막만 봤기 때문에 오해를 하고 복수심을 불태운다. 이는 피터의 플린트에 대한 오해와 마찬가지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와 용서와 화해이다.

이 영화는 “복수심은 독과 같아.”라고 웅변한다. 감독은 피터와 메리 제인의 사이에 교묘하게 모든 인간들의 성취욕 중 천박한 면모를 심어 놓았다. 인트로부터 ‘모든 것을 성취한 내가 이제 마지막으로 취할 것은 결혼.’이라는 식의 피터의 내레이션이다. 뮤지컬에서 해고된 메리 제인의 낭패감도 마찬가지. ‘이블 데드’로 스타덤에 올라선 레이미 감독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단연 마스터피스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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