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주필의 가족남녀M&B] 깊은 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서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에게 구박받고 자란 불쌍한 신데렐라가 멋진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는 대개 이런 식으로 성역할 고정관념을 부추긴다. 동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도 20세기까지는 원작에 충실한 편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변화가 일고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 영화 ‘백설공주’ 스틸 이미지. 공주가 왕자를 마법에서 풀어주려고 키스한다.

영화 ‘백설공주’(2012)에서 공주는 마을을 둘러보러 왕궁 밖으로 나가다가 난쟁이들의 습격을 받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왕자를 풀어준다. 그리고 백성들의 참상을 목격한다. 아버지 서거 후 여왕이 나라를 망쳤다며 되찾으려 한다. 왕비로부터 공주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는 차마 실행하지 못하고 괴물이 나오는 숲속에 풀어준다. 공주는 난쟁이들을 만나 함께 지내며 검술 등을 배운다. 여왕의 신하가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가는 걸 난쟁이들이 빼앗아오자 공주가 주민들에게 되돌려준다. 여왕의 군사를 이끌고 난쟁이들을 잡으러 온 왕자와 대결해 공주가 이긴다. 공주 일행은 여왕과 왕자의 결혼식장을 습격해 왕자를 잡아 온다. 마법에 빠진 사람은 공주가 아니라 왕자다. 여왕이 건넨 사랑의 묘약을 마신 그에게 공주가 키스해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한다. 왕비가 보낸 괴물도 백설공주가 무찌른다. 그러자 괴물이 선왕으로 변한다.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에 왕비 마녀가 찾아와 독이 든 사과를 건넨다. 공주는 사과를 조각내서는 “어른부터 드셔야죠”라며 오히려 거꾸로 권한다. 소극적인 공주와 적극적인 왕자를 당연시하는 동화와 크게 다른 내용이다.

▲ 영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포스터

영화 ‘신데렐라’(2021)에서 의붓언니가 “나 예쁘냐?”고 묻자 신데렐라는 “정말 예쁘다. 하지만 다른 사람 생각이 무슨 상관이냐. 정말 중요한 건 거울을 보며 스스로 어떻게 느끼느냐다.”라고 말한다. 왕의 가족이 참석한 위병 교대식에서 사람들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자 선왕의 동상에 올라간다. 왕이 내려오라고 하자 “뒤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관람석을 만들어 키 작은 평민들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외친다. 왕자는 대담한 신데렐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직접 만든 드레스를 팔러 시장에 가자 상인들이 “여자가 사업가인 척하네.”라고 비아냥거린다. 신데렐라는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살림도 꾸려나가니 당연히 사업도 할 수 있죠.”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데렐라를 찾아 나선 왕자가 드레스를 산다.

▲ 영화 ‘산데렐라’ 스틸 이미지. 왕자는 왕위를 여동생에게 넘기며 신데렐라와 결혼한다.

왕자의 신붓감을 물색하는 무도회가 열린다. 신데렐라도 직접 만든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려 한다. 계모는 “이웃집 부자가 네게 관심이 있으니 결혼 상대가 정해진 너는 무도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제지한다. 그러자 “제 결혼 상대는 제가 정한다.”고 반박한다. 계모가 옷에 잉크를 뿌리자 요정이 나타나 옷과 구두, 마차를 제공한다. 신데렐라는 왕자와 만나 춤을 추다가 12시가 되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전에 달아난다. 왕은 왕자에게 이웃나라 공주와 정략결혼을 강요하다가 ”우리가 정략결혼의 실패 케이스“라는 왕비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꾼다. 왕자는 신데렐라에게 청혼한다. “내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을 보면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건 왕위가 아니라 당신이다, 당신이 받아준다면.” 신데렐라가 키스로 받아들인다. 왕자는 왕위를 포기한 채 세계여행을 하기로 한다. 왕위는 여동생에게 넘어간다. 외모지상주의를 비롯한 성역할 고정관념에 메스를 가한다.

또 다른 신데렐라 각색 영화 ‘애버 애프터’(1998)에서 다니엘은 말타기, 수영, 나무타기 등등 못하는 게 없다. 왕자를 어깨에 업어 도적떼에게서 구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마녀는 별다른 이유 없이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고, 왕자가 키스로 공주를 깨운다. 이와 달리 영화 ‘말레피센트’(2014)에서는 스테판 왕이 연인 사이였던 말레피센트를 배신하고 날개를 잘라 왕에게 바침으로써 왕의 사위가 되고 왕위를 물려받는다. 왕의 배신에 대한 복수로 저주를 내린 것이다. 뒤늦게 저주를 후회하며 오로라 공주를 직접 키우고, 물레에 찔려 잠든 공주에게 왕자를 데려가 키스하게 하지만 공주는 깨어나지 않는다. 결국 말레피센트가 참회와 사랑의 말과 함께 이마에 키스하자 공주가 눈을 뜬다.

▲ 영화 ‘말레피센트’와 ‘슈렉’의 포스터

외모와 편견에 맞서는 ‘슈렉’(2001), 남동생을 구하기 위해 여왕에 맞서는 용감한 소녀 이야기 ‘눈의 여왕’(2012) 등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애니메이션도 많다.

이제는 우리도 남자답게 여자답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아야 하겠다.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동화와 영화도 새롭게 쓰고 만들면 좋겠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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