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지평은 서울시 건축문화활성화사업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를 진행했다.

[미디어파인 칼럼=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 문화지평은 김중업과 김수근의 건축유산을 둘러보는 서울시 건축문화 활성화사업을 수행했다. 이번 사업은 도시인문콘텐츠·디지털 헤리티지 아카이빙 전문단체인 문화지평이 서울시 건축기획과의 후원으로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란 주제로 진행했다. 8회 차 답사는 서울 중심부 사대문 안에 위치한 김중업, 김수근의 작품군을 소개한다. 답사는 10월9일 오전 9시 김태휘 해설사 해설로 세실마루에서 시작했다.

종로와 중구 일대는 한마디로 김중업과 김수근 건축의 ‘작품 창고’다. 답사를 시작한 세실극장을 비롯해 욱일빌딩, 옛 이탈리아대사관저(이경호 가옥), 안국빌딩 등이 김중업의 작품이고 정동빌딩, 옛 문화방송(현 경향신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사, 국립민속박물관 야외휴게소, LG상남도서관, 공간사옥 등이 김수근의 작품이다. 갈 곳도 많고 담긴 이야기도 많은 답사였다. 담사는 4시간가량 이어졌다.

연극계 오랜 구심점 김중업의 세실극장

▲ 김중업이 설계한 세실극장은 개관 이래 오랫동안 우리나라 연극계의 구심 역할을 한 공연장으로 문화사 및 건축사적 측면에서 보존 필요성이 높은 문화유산이다.

세실극장은 지난 5회 차 답사(8.28) 기록에서도 다뤘지만 문화자원으로써의 가치 측면에서 기록을 남긴다. 세실극장은 1976년에 개관한 연극전용극장이다. 세실극장이 위치한 성공회 제1회관은 1976년 4월에 준공된 연면적 5,011.64㎡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김중업의 작품이다. 세실극장은 개관 이래 오랫동안 우리나라 연극계의 구심 역할을 한 공연장으로 문화사 및 건축사적 측면에서 보존 필요성이 높은 문화유산이다. 세실극장의 소유자는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이다.

개관 당시 320석의 객석을 갖춰 당시 소극장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부채꼴의 공간 구성으로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시야 확보가 용이해 배우와 관객의 친밀도가 높은 극장이었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연극협회에서 대관해 연극인 회관으로 사용했다. 이 기간 동안 매해 대한민국연극제를 개최해 1970년대 대한민국 연극계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세실극장에서 개최된 대한민국연극제는 5회까지 이어졌다.

1981년부터 민간극단 ‘마당’에서 극장을 인수한 뒤 소속 단체의 공연을 중심으로 극장을 운영했지만 IMF를 맞아 재정난으로 1년을 휴관하기도 했다. 1999년 4월 극단 ‘로뎀’에서 극장을 인수하고 국내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십’을 도입했다. 네이밍 스폰서십을 통한 기업의 후원은 극장의 대관료를 낮출 수 있는 탄력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지속되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급기야 2018년 1월 폐관했다. 서울시는 42년 역사의 세실극장을 문화자산으로 보전하기 위해 민·관 상생의 ‘문화재생’을 통해 2018년 4월 재개관했다. 시가 극장 건물을 장기 임대하고 극장을 운영할 비영리단체를 선정해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세실이란 극장명은 성공회 캔터베리 관구의 제4대 한국교구장인 알프레드 세실 쿠퍼(한국명 구세실)에서 따온 것이다. 세실 주교는 1931년 당시 한국교구장이였던 마크 트롤로프(조마가) 주교가 람베스 회의에 갔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 배가 충돌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후임으로 임명됐다.

‘특수기능’에 강했던 김수근의 정동빌딩

▲ 1970년대 말 김수근의 건축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중앙정보부 정동분실로 지었고 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사용하고 있다. 세 번째 사진은 김수근의 제자 윤승중이 설계한 조선일보미술관이다.

세실마루에서 내려와 답사팀은 성공회주교좌성당 뒤편에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건물 앞에 섰다. 연말연시면 어김없이 지하철역이나 번화가에 등장하는 ‘사랑의 열매’ 모금함을 운용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소유의 이 건축물은 김수근이 설계한 정동빌딩이다. 1984년 주식회사 한양이 인수해 한양빌딩으로 불린 때도 있었다. 2004년 한국자산신탁을 거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소유가 인수했다.

위에서 보면 4각형에 가까운 5각형으로 각 꼭짓점에 적벽돌 원기둥(샤프트)이 세워져 있고 각 변에는 알루미늄 캐스트를 사용해 유리창을 모듈처럼 끼워 넣었다. 1970년대 말에 김수근의 건축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철거돼 볼 수 없는 대한지방행정회관(1979, 마포구 공덕동)도 같은 알루미늄 캐스트 모듈을 사용했다.

공간건축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태평로 주변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변색 벽돌 치장의 특수기능을 유치한 건물로서 각 코너마다 원통형의 구조에 계단 등 설비기능을 부여했으며, 원통형의 수직적인 벽들의 무거움을 덜어주기 위해 알루미늄 캐스트를 사용, 수평적인 요소를 가미한 조형으로 단순화했다’고 적고 있다.

설명 중 ‘특수기능’이란 단어가 눈에 띈다. 이는 다름 아닌 정동빌딩 설계를 의뢰한 곳이 중앙정보부였기 때문에 뭉뚱그린 표현이다, 건축물의 용도는 안기부 정동분소다. 김수근은 이와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기 때문에 ‘특수기능’을 가진 건축에 강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청 홍보관을 거쳐 민주인권기념관(가칭)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올 3월에 공사에 들어가 2023년 6월에 재개관할 예정이다.

정동빌딩이 있는 이 길은 붉은 벽돌 건물로 채워져 있다. 정동빌딩 옆에 있는 조선일보미술관(1988)은 건축가 윤승중이 설계한 건물이다. 이곳에는 1922년 지어진 정동제일예배당이 있었다. 1946년부터 덕수교회로 불리다가 1980년대 초 이곳을 떠나 성북동으로 이전했다.

조선일보미술관 옆 성공회 성가수녀원은 한옥을 제외한 부분을 건축가 김원이 1990년 설계했다. 그는 훗날 설계도가 발견된 성공회주교좌성당의 증축을 맡았던 건축가다. 윤승중과 김원은 공교롭게도 김수근의 제자들이다.

자유센터를 닮은 정동 작은형제회 수도원

▲ 1965년 김수근이 설계한 프란치스코수도원은 출입구 캐노피와 격자장식 등이 자유센터를 연상시킨다.

정동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아담한 정동아파트 옆에는 적벽돌로 외관을 마감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을 만날 수 있다. 교육회관은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에서 1987년 개원 이래 피정과 각종 모임 등을 위한 도심 속의 영성 쉼터로 운영되고 있다. 작은형제회는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의 기독교 수도회다. 이 자리는 1923년 경성외국인학교가 있던 곳이다. 1985년 9월 4일에 기공식을 가진 이 건물은 광장건축의 김원과 최부득이 했다. 면적 3,867㎡의 대지 위에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준공됐고 2014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양이 완성됐다.

교육회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 건물 뒤에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있다. 김원의 스승인 김수근이 설계해 1965년 준공된 건축물이다. 근대주의양식의 종교건축물로 60년대 중반 무렵 한국 근대주의 건축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평지 중의 옥상난간 장식, 수평 띠 창문 형태, 자유센터를 연상시키는 출입구 캐노피와 격자장식 등의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있다.

수도원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건축면적은 871.2㎡, 연면적은 3,474.93㎡이다. 준공 당시는 지상 3층 건물이었으나, 1986년의 공사를 통해 4층으로 증축했다. 이곳에는 한국관구의 각 행정사무실과 타 수도회나 교구의 내방객을 맞이하는 시설들이 입주해 있다.

작은형제회 한국관구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9월 캐나다 성 요셉 관구 소속의 수도사 드콰이어와 벨레로즈 등이 부산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그해 9월 이들은 대전에 정착하고 이듬해인 1938년 12월 15일 대전 목동에 수도원을 건립했다. 그러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수도사들이 일제에 의해 종전(終戰)까지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석방 후 본국으로 출국했던 벨레로즈 수도사가 1955년 다시 입국 수도원을 재건해 지금에 이른다.

60년대 김수근의 작품경향 잘 담긴 MBC정동사옥

▲ 옛 MBC정동사옥(현 경향신문)과 그 뒤편에 방송국 건물로 사용했던 정동빌딩은 김수근이 1967년 설계한 건축물로 1960~70년대 초반 그의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경향을 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육관과 수도원을 지나 강북삼성병원 앞 정동사거리 방향으로 오르면 길 끝에 경향신문 사옥이 나타난다. 이 자리는 한국의 첫 정교회 성당이 있던 곳이다. 고종황제가 1903년 주한러시아 공사관 직원에게 하사한 땅에 정교회가 처음 터를 잡았다. 성당 신축 계획은 설계까지 마무리된 상태에서 러일전쟁으로 인해 중단됐다. 정교회는 해방 후 적산으로 분류된 정동 땅을 되찾았으나 소송비용 때문에 처분하고 현재 아현동 마포형무소 소장 사택 자리에 성 니콜라스성당을 지어 이전했다.

정교회가 떠난 자리에 들어선 경향신문사는 1946년 천주교 서울교구 소유의 신문사로 처음 출범했다. 1962년 민간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이후 기아산업, 한국문화방송(MBC), 한화그룹 등으로 여러 차례 경영권이 바뀌다가 1998년 사원주주회사로 독립했다.

옛 MBC정동사옥(현 경향신문)과 그 뒤편에 방송국 건물로 사용했던 정동빌딩은 김수근이 1967년 설계한 건축물이다. 두 건물 모두 1960~70년대 초반 그의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경향을 담고 있다. 앞쪽 방송국건물은 지금은 경향신문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이 건물은 아래층은 방송국, 위층은 호텔로 사용하도록 설계돼 하층부와 상층부가 전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드러나는 김수근의 건축물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옛 방송국에서 사용했던 안테나를 남겨두고 있다.

뒤편에 있는 정동빌딩은 리모델링이 끝나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노출 콘크리트와 기둥 등이 주는 70년대 건물의 분위기는 없어지고 지금은 유리로 외장을 마감했다. 안을 들여다보면 김수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굵지 않은 콘크리트 기둥이 남아 있다. 정동빌딩은 타워처럼 생긴 빌딩과 공연장처럼 생긴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김중업의 후기 대표작 욱일빌딩

▲ 욱일빌딩(박시우 치과의원)은 현대적인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김중업의 후기 대표작이다. 옥상 구조물과 횡단면도, 입면도.

김중업은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갖다가 프랑스 단수여권을 발급받아 강제로 1971년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1978년까지 프랑스 유랑 생활을 거쳐 귀국해 1988년 작고 시점까지를 김중업의 후기로 본다.

욱일빌딩(박시우 치과의원)은 현대적인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김중업의 후기 대표작이다. 대지면적 377.2㎡, 건축면적 169.05㎡, 연면적 970.32㎡ 지하 2층, 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주조로 외장은 커튼 월과 따도기로 마감했다. 설계와 준공 모두 1985년에 했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과 구세군 회관 샛길에 보이는 욱일빌딩은 초현실적인 외관이 인상적이다. 건물 규모는 작지만 날카로움과 원만함을 동시에 품어 시선을 단박에 끄는 건물이다. 현대적인 커튼월(전면 유리 마감) 방식의 외벽에 거대한 등대를 연상시키는 거석이 붙은 듯한 모습이다.

색감이 짙은 푸른색 유리벽과 거무튀튀한 항아리를 깨서 붙인 건물 뒤편의 몸체가 서로 맞붙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이다. 이런 기법의 외관 설계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준공 당시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현재 욱일빌딩은 미용실과 카페, 한의원, 치과의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간판과 에어컨 실외기 등으로 본래의 조형미를 완벽히 느끼긴 어려운 상황이다.

공간건축의 귀한 운수건축 경복궁역

▲ 김수근의 공간건축이 설계한 경복궁역은 1985년 개통 당시에는 중앙청역 이었으나 1987년 5월 1일에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답사팀은 욱일빌딩을 지나 옛 지명 야주현(夜珠峴)을 넘어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야주현 또는 야조현이라 부른 고개는 경희궁 정문 흥화문(興化門) 편액 필체가 빛이나 밤에 고개를 환히 비췄다는 야설로 이름 붙은 고개다. 이신이란 인물이 썼다는데 그만큼 명필이란 의미일 것이다.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은 지하철역으로는 독특하게 김수근이 설계를 맡았다.

경복궁역은 1985년 개통 당시에는 중앙청역 이었으나 1987년 5월 1일에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병기역명 또한 2000년 3월에 처음 추가되었을 때는 '정부중앙청사'였으나 2013년 1월 3일에 '정부서울청사'로 개명됐다.

서울교통공사 미술관, 일명 메트로미술관이 역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공간건축의 김수근 작품 중 하나이나 설계 실무는 류춘수가 맡았다. 공간건축의 수많은 운수건축 계획들 중 실현된 사례가 거의 없는데, 그중 하나이다.

김중업 안국빌딩과 옛 이탈리아대사관저 등

▲ 안국동사거리의 랜드마크인 안국빌딩과 북촌 깊숙한 가회동에 있는 옛 이탈리아대사관저(이경호 가옥).

경복궁역에서 경복궁 앞마당을 지나 동십자각을 거쳐 안국역으로 향하다 보면 안국동사거리의 랜드마크인 안국빌딩을 만날 수 있다. 이 빌딩은 1970년 3월에 사용승인이 난 김중업의 작품이다. 연면적 6,665.4㎡(2,016평) 지하 1층, 지상 15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이다.

처음에는 법무부 갱생보호회관으로 지었다. 지금의 법무보호복지회관의 전신이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들을 대상으로 사후관리와 원호를 수행하는 기능을 했다. 1970년 당시 준공 시가를 보면 ‘법무부 갱생보호회가 형여자들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마련한 갱생보호회관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의87에 세워져 (6월)11일 상오 10시 이호 법무장관 등 관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문을 열었다. 총 공사비 2억여 원이 투입된 이 회관은 2백65평의 대지위에 지하 1층 지상 15층의 매머드 건물로 회관을 통해 얻어지는 수입금은 갱생보호사업과 연차적인 재정조성기금으로 쓰여진다’(중앙일보)고 기록돼 있다.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89에는 김중업이 1967년 지은 일명 이경호 가옥이 있다. 개인주택으로 지었다가 1980년 초 주한이탈리아대사관저, 1983년 한국미술관으로 10년간 사용됐다. 연면적 926㎡(280평) 구조는 철근콘크리트조와 마감은 노출콘크리트다.

동측에서 필로티 하부를 회전해 진입하는 체계는 르 꼬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와 유사하다. 동남측의 기둥들에 각층들은 받쳐져 있어서 대담한 켄틸레버와 그것을 구성해주는 격자의 골조들이 전통건축의 구조미를 차용했다고 평가받는다. 각층은 바닥판과 기둥구조로서 자유로운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 건물은 한국의 사원과 궁궐이 가졌던 아름답고 멋있는 요소들을 창출해 우리의 얼을 강력하고 뚜렷하게 심으려고 했다는 평가다. 대담한 지붕을 받치는 기둥들의 주변을 유리블록으로 처리한 것은 지붕아래 부분을 더욱 밝게 해서 부유성을 강조했다. 주택 지붕은 김중업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주택의 지붕은 건물 매스를 덮고 있는 느낌인데 날씬한 사각기둥 위에 거대한 수평 지붕이 떠있는 듯하다.

기둥이 지붕과 직접 만나는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언어와 달리 전통 지붕의 서까래를 형상화한 격자보를 통해 기둥과 지붕이 만나게 함으로써 한국적 건축언어를 찾으려는 김중업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거대한 지붕은 바로 뒤의 경사지 위쪽에 있는 한화그룹 일가 저택으로부터 시각적인 보호 장치도 갖는다.

집을 팔라는 주변 제안에 집주인은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이란 의미에서 이 집의 건축적 가치에 공감하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사람에게 팔고자 평소 인연이 있던 서울옥션에 경매로 내놓기도 했다. 국내서는 건축물에 대한 옥션 경매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보증금 40억 원을 낸 곳이 없어서 공개입찰이 취소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 LG상남도서관은 LG연암문화재단이 설립한 사설 도서관인데 본래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1967년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맡겨 지은 개인 저택이다.

김 해설사는 답사팀을 현대 계동사옥 뒤편으로 이끌었다. 이곳에 뭐가 있나 싶었는데, LG상남도서관 앞에 멈춰 섰다. LG상남도서관은 LG연암문화재단이 설립한 사설 도서관이다. 본래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1967년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맡겨 지은 저택이다. 인화를 중시하는 LG家답게 지하 1층, 지상 3층에 3대가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지었다. 1986년 2세대 형으로 개조했고 90년에는 2대 구자경 회장 내외만 단출하게 살았다. 구 회장이 연암문화재단에 기증해 1996년부터 전자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수근 건축의 정수 ‘공간사옥’

▲ >김수근 건축의 결정체 공간사옥과 답사팀.

답사 막바지다. 도서관을 지나 창덕궁 담벼락을 따라 큰길로 나오자 우측에 공간사옥(현 아라리오뮤지엄)가 보였다. 김수근 건축의 결정체로 봐도 무관한 작품이다. 공간건축의 산실이자 문화예술 발전에도 일조한 공간이다. 현대건축의 거장이라 칭송받는 김수근이 세운 건축설계사무소 ‘공간(空間)’의 사옥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등록문화재 제586호로도 지정됐다.

대지면적 660㎡에 건축면적 97.4㎡, 연면적 1,061㎡(321평) 지하 2층, 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다. 공간 사옥이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 관상감 터였다. 관상감은 천문과 지리, 역수 등에 관한 업무를 맡아본 관아다. 지금도 현대사옥 주차장에 관상감 유구가 남아있다.

공간사옥은 경사지에 세로로 긴 장방형의 평면을 가지며 주 출입구는 도로에서 측면에 위치한다. 3.6m×3m의 모듈을 가지며 3줄의 벽체가 조적조 구조로 밖은 검은 벽돌, 내부는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벽은 내벽과 외벽이라는 두 개의 면을 가지고 있다. 공간사옥에서는 이러한 경계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동일한 벽체의 재료를 달리함으로써 공간분화를 꾀했다. 공간사옥은 대로변에 직각을 이루는 3개의 벽돌벽이 건물 진체의 구조적인 분할과 공간적인 분할을 주도한다.

김현섭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1970년대 지어진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이제 하나의 전설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까닭은 여럿이다. 좁은 대지에 다변화된 공간을 높은 밀도로 짜 넣은 벽돌집 자체의 탁월함은 물론이요, 김수근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당대 주도한 건축계 및 예술계의 활동 흔적이 건물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이라고 공간사옥을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간사옥이 한국 현대건축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면서도 더 이상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지 못함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공간사옥은 2013년 말 공간그룹의 손을 떠나 이듬해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재탄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김수근의 공간사옥이 자체만으로 완결적 일지 모르지만, 시간의 적층과 함께 자라나 더 온전한 전체를 이뤘다는 사실이다. 유리 신사옥과 한옥 등이 들어서면서 일종의 ‘공간 콤플렉스(SPACE Complex)’를 이룬 셈”이라고 평가했다.

1971년 남쪽 부분이 먼저 지어진 뒤 1977년에 한 차례 증축을 거치면서 지상 5층이 됐다. 본관의 남쪽과 북쪽은 브리지, 로비, 나무 데크 등 다양한 공간으로 연결돼 있다. 건물의 공식적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5층이지만 외부에서 보면 명확히 구분이 어렵다. 이래저래 세보면 사실상 8층이 된다. 북측 대지가 남측보다 1층 정도 높고 각 층을 중간에서 연결하는 스킵 플로어 때문에 정확한 층 구분이 쉽지 않다.

외부는 좁고 긴 네모난 상자가 조합된 모습이지만 내부는 계단이 매우 복잡한 미로다. 계단참 몇 개를 올라 다른 방이 만들어지고 또 옆에 나 있는 몇 개의 계단참을 따라 또 다른 방이 높이를 달리하며 연결된다. 이렇게 복잡한 방들이 구석구석 있지만 전통과 현대에 대한 고민으로 층이 낮고 일종의 ‘휴먼스케일’로 지었기 때문에 딱 필요한 만큼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1990년에는 김수근이 사용하던 사무실과 집이 있던 자리에 공간의 2대 소장인 장세양이 통유리 건물을 지었다. 또 3대 소장 이상림이 전면부에 한옥을 증축했다. 김 교수가 말한 공간 콤플렉스, 40년 시간의 적층은 이를 두고 한 소리다.

이런 증축과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건물군의 핵심은 김수근의 벽돌 본체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5층은 야근과 철야 작업이 일상이던 공간 직원들을 위해 온돌방으로 지었다.

<참고문헌>

-김수근문화재단 홈페이지,
-월간빌딩문화(1991), [도심속의 문화공간] 서울성공회 성당과 마당세실극장, 편집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세실극장,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원
-건축도시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 

[문화지평]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도시문화콘텐츠연구·답사‧아카이브 전문단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2016), 역사도시 서울답사(2017), 서울 구석구석 톺아보기(2018),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2019), 서울미래유산 시장 관광자원화 아카이빙(2019), 서울 첫 종교건축물과 주변 근대 건축물 답사‧아카이빙(2020), 물길 따라 점·선·면으로 잇는 서울 역사(2021),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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