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1408’(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 2007)은 집 자체를 유령으로 설정한 일련의 공포 영화와 유사하지만 메시지가 꽤 신선하다. 마이크(존 쿠삭)는 어린 딸 케이티를 잃자 아내 릴리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가출해 LA에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공포 소설 작가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귀신이나 사후 세계 등 신비주의를 배척하는 회의론자이다. 그래서 그런 장소를 찾아다니며 유령 따위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를 즐기며 산다. 그런 그에게 ‘돌핀 호텔 1408호에는 절대 들어가지 마.’라는 엽서가 날아온다. 마침 쓰던 소설의 마무리 소재를 얻기 위해 그 호텔에 간다.

매니저 제럴드(사무엘 L. 잭슨)는 고급 코냑까지 서비스하며 극구 만류하지만 마이크는 연방법을 운운하며 기어이 그 방에 들어가고야 만다. 10분 후 저절로 1시간 타이머가 작동되는가 하면 기이한 현상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처음에는 호텔 측의 농간인 줄 알았던 마이크는 서서히 공포에 휩싸이는데.

이 작품은 극장판과 감독판의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전자는 마이크가 방에 불을 질러 소방관들을 출동하게 만듦으로써 탈출하는 것이고, 후자는 죽어서 릴리를 만나 함께한다는 것인데 다수의 관객은 전자를 선호한다. 관객 각자의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열린 결말의 해피 엔딩이기 때문일 것이다.

쿠삭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혼자 펼친다. 잭슨은 그저 잠시 거들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율하게 만드는 공포적 요소가 매우 참신하게 펼쳐지는 게 강점이다. 이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소재가 죽음이라면 말하고자 하는 건 유심론이다.

비록 발달한 첨단 과학에 의하여 사변적 유심론은 현저하게 퇴조한 게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형이상학적 독단이나 종교적 강제를 피해 관객에게 ‘증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일지라도 때로는 믿는 게 이로울 수 있다.’라는 꽤 부드러운 설명을 한다. 마이크는 신비를 부정하는 매우 현실적인 유물론자였다.

심지어 “눈에 보인다고 다 진짜는 아냐. 모든 현상에는 다 이유가 있어.”라는 신념을 가졌을 정도. 그러니 그가 공포 소설로써 먹고산다는 것은 그의 기준에 비춰 볼 때 일종의 사기였다. 자신이 안 믿는 걸 독자에게 믿게 함으로써 돈을 벌었으니까. 그런 그에게 딸이 병으로 죽은 것은 큰 충격이었다.

케이티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겁을 먹었지만 릴리는 사후 세계는 아주 좋은 곳이고, 친절한 친구들도 많다며 달래 주었다. 사후 세계나 영혼을 믿지 않는 마이크 입장에서는 케이티의 상황이 답답했다. 신을 안 믿으니 신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이기주의자이기에 자신을 책망하지도 못했다.

그는 1408호에서 죽은 케이티와 아버지를 비롯해 수많은 영혼들을 만난다. 처음에는 호텔 누군가의 농간인 줄 알았다가 다시 꿈이라며 스스로 세뇌한다. 그러나 방 자체가 악마라는 것을 깨닫고는 비로소 오만했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집을 꺾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이타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매우 명확하다. 유심론과 유물론, 혹은 관념론과 실재론 중 어느 것을 믿을 것인가? 마이크가 제럴드의 만류를 뿌리치고 1408호에 입실하는 배경은 자신만의 신념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조차도 때로는 착각이나 환영일 수 있다는, 자기만의 믿음의 고집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명백한 유물론자이자 실재론자이기 때문이기도. 그는 ‘꿈에서는 안 죽는다.’라며 창밖으로 뛰어내림으로써 그 ‘악몽’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확실할까? 망자는 말이 없기에 그건 아무도 모른다. 꿈을 꾸다 죽은 사람이 없다고 확언할 증거는 없다. ‘매트릭스’는 분명히 반대한다.

마이크의 이론대로라면 주인공들이 매트릭스 안에서 활동할 때는 죽지 않아야 마땅하지만 영화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확신에 찬 어조로 사후 세계의 존재를 외친다. 진짜 귀신이,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장하는 사람만 있을 따름이다. 과학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

그러나 과학으로도 증명이 안 되는 현상과 형상은 수두룩하다. 방에 나타난 아버지는 “나도 한때는 너와 같았고, 너도 언젠간 나처럼 돼.”라고 말한다. 죽음을,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이라는 충고이다. “귀신을 믿는 이유는 사후의 삶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대사이다. 귀신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그걸 믿음으로써 얻을 것이 핵심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사후 세계를 믿지 않은 채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모든 시간이 악몽일 것이다. 이 현실 세계가 바로 지옥일 것이다. 전설과 신화가 전승되고 종교가 각광받는 이유는 그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 분명히 긍정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주의’나 ‘~론’이라는 사상은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사람들의 개념은 제각각이고, 어느 것 하나 월등하게 완벽한 명제는 사실상 없다. 시대에 따라 맞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낡은 것이 되기도 하며, 새로운 이념에 자리를 양보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은 생명력이 길다.

네안데르탈인의 장례 문화부터 시작된 영혼 불멸 사상은 플라톤을 거쳐 유력 종교들로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사후 세계의 존재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영화의 마지막 강렬한 교훈이다. 마이크가 더 이상 공포 소설을 안 쓴다는 것과 녹음기에 케이티의 목소리가 녹음된 게 그 뜻이다. 14층은 사실 13층이고, 1408을 합치면 13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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