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미테이션 게임’(모튼 틸덤 감독, 2014)은 실존 인물의 전기 형식에서 벗어나고, 특정 이슈를 부각하는 오류를 피해 미스터리 구조를 갖췄다, 1951년 영국 맨체스터의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교수의 집에 도둑이 들자 노크 형사가 수사하고, 튜링의 과거가 인서트로 삽입된 형식으로 진행된다.

도난당한 물품이 없다는 데 대해 노크는 직감적으로 튜링이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1912년 태어난 튜링은 수학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지만 비친화적인 성격 탓에 학창 시절 ‘왕따’였다. 고교 때 유일한 친구는 크리스토퍼. 튜링은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미 동성애 성향을 보였다.

크리스토퍼 역시 결핵을 앓으며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지만 튜링에게 알리지 않고 방학 중 사망한다. 튜링은 더욱 외톨이가 되었지만 24살에 교수로 임용된다. 1939년 그는 런던 외곽의 블레츨리 라디오 공장으로 데니스턴 중령을 찾아간다. 사실 이곳은 독일군 암호 이니그마를 해독하는 연구소.

한 폴란드 정보원이 베를린에서 이니그마 기계를 입수했지만 영국군은 도저히 암호를 풀 수 없자 MI6 요원 멘지스(마크 스트롱)와 함께 민간인 암호 전문가를 고용해 해독하려 하는 것. 중령은 알렉산더(매튜 구드)를 팀장으로 한 팀에 튜링을 합류시키지만 독특한 성격 탓에 팀원들과 사사건건 엄발난다.

결국 중령이 튜링을 해고하자, 그는 멘지스에게 처칠에게 전달해 달라며 편지 한 통을 건넨다. 곧 처칠에 의해 튜링이 총책임자로 임명된다. 튜링은 일반인이라면 2000만 년 걸릴 일을 단시간에 해결하기 위해 팀원 일부를 해고하고, 시험에서 압도적 실력을 뽐낸 조안(키이라 나이틀리)을 고용한다.

튜링은 무려 10만 달러짜리 기계(컴퓨터)를 만들고 크리스토퍼라 명명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던 조안이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한다.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 그러자 튜링이 청혼하고 둘은 약혼자로서 계속 함께 일한다. 진전이 없어 고심하던 튜링은 조안의 친구에게서 힌트를 얻어 드디어 해독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숨기자고 고집한다. 한편, 현재의 노크는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법정에 선 튜링은 감옥행을 피하기 위해 화학적 거세를 선택해 약물 치료를 받다가 1954년 6월 7일 42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튜링은 제2 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2년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1400만 명의 인명을 구했다. 그러나 영국은 팀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겼고, 종전 후 팀을 해산할 때 모든 증거 자료를 소각했다. 튜링은 2013년에야 특별 사면을 받았다. 작품 속에서 그는 “나는 영웅인가, 범죄자인가?”라고 스스로 묻는다.

그가 해독 사실을 알리는 걸 일시 보류한 건 만약 독일군의 암호대로 연합군이 대처하면 작전 한두 번 만에 적이 알아챌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새로운 암호 체계를 만들 것이니, 연구는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은 작은 것은 져 주고, 큰 것만 이기는 작전을 펼쳤기에 승전할 수 있었던 것.

그렇기 때문에 연합군은 물론 영국군조차도 그들의 존재를 몰랐었다. 전후에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그러니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동성애라는 범법을 저지른 범죄자 취급을 받았을 따름이다. 감독은 동성애를 전방에 내세우지도, 튜링을 해명해 주려고도 하지 않는 명민함을 보인다.

다만 참된 사랑과 그것을 통한 실존의 문제를 거창하게 외친다. 초기에 알렉산더가 튜링을 비웃자 그는 “고장 난 시계도 하루 2번은 맞아.”라고 응수한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라는 뜻이다. 그가 비록 반사회적인 성격으로 타인들과 어울리지 못하지만 장점도 있고, 그만의 존재론도 있기 마련.

튜링은 조안을 연애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고 떠나가라고 하자 조안은 “우리는 서로의 지성을 사랑하니 충분한 합당한 결혼이다.”라고 외친다. 조안이 없었다면 튜링은 이니그마를 풀지 못했을 것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조안을 통해 ‘여성 해방’을 운운한다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당시의 풍토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는 연출 역시 매우 영리하다. 노크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나요?”라고 묻자 튜링은 “다르게 생각한다. 인간도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여자는 여자라서 ‘틀린’ 게 아니고, 게이는 소수 성애자라서 ‘틀린’ 게 아니다. 다만 다를 뿐이다. 튜링이 “난 보편적인 사람과 다르다.”라고 자조하자 조안은 “당신이 평범하지 않기에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었다.”라고 정정해 준다. 보통은 보통대로, 특수는 특수대로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기 마련.

제1 차 세계 대전 후의 생철학을 제2 차 이후 이은 초기 실존주의의 실존은 존재자의 일반적 본성인 본질에 대하여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것을 뜻했다. 이후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 이르러 ‘인간의 존재’가 되었고, 키르케고르와 포이어바흐는 인간이라는 각 개체의 독자적인 실제 존재를 가리켰다.

이렇듯 실존주의는 각 개인의 주체성이 진리이다. 중령은 “난 전쟁에서 명령, 규율, 지휘 체계로 이겼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실존주의의 반대편인 합리주의나 실증주의에 가깝다. 체제 순응이다. 체제나 사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지독한 개인주의는 인류애에 어긋나지만 자기애만큼은 항상 옳다고 웅변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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