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LA 컨피덴셜’(커티스 핸슨 감독, 1997)은 LA가 상징하는 미국(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화려한 겉모습과 그 이면의 추악함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 매우 재미있고 뛰어난 누아르이다. 1953년 크리스마스이브 LA. 최대의 범죄 단체인 미키 코헨 조직에 대한 경찰의 대규모 제거 작업이 시작된다.

경찰서에서 파티가 열리고 버드(러셀 크로우) 형사는 술을 사러 나갔다 린(킴 베이싱어저)과 수전(엠버 스미스)을 본다. 술에 취한 형사들이 경찰을 공격해 붙잡혀 온 용의자들과 싸움이 붙는다. 그 혐의로 버드의 파트너 스텐스가 기소되고 융통성 없는 신참 에드(가이 피어스)가 법정에서 증언해 해고된다.

스텐스가 한 카페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에 섞여 발견된다. 더들리 경감은 단순 강도 사건으로 판단해 신참 에드를 리더로 한 수사팀을 꾸린다. 에드는 3명의 흑인 용의자들을 검거해 포상을 받는다. 하지만 버드는 뭔가 석연치 않다고 여겨 경찰청의 수사 종결과 달리 단독 수사에 들어간다.

희생자 중에 수전이 있었기 때문. 린과 수전을 만나던 당시 막강한 사업가 피어스와 그의 경호원 믹스도 있었다. 믹스는 전직 경찰이고, 피어스는 유명 여배우처럼 성형 수술을 한 고급 매춘부를 데리고 영업하며 고위층에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B급 영화를 제작하는, 할리우드의 ‘큰손’이었다.

유명 예능 방송의 자문을 해 주는 잭(케빈 스페이시) 형사는 타블로이드지 ‘허쉬 허쉬’ 편집장인 시드(대니 드 비토)와 짜고 특종을 기획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두 사람은 남창을 동성애자 검사에게 소개해 주는데 무슨 일인지 남창은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버드는 린과 연인 사이가 된다. 에드는 카페 살인 사건 용의자들의 진짜 피해자를 만나 용의자들은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진술을 듣는 한편 수사 중 린에게 빠져든다. 버드는 수전의 집 창고에서 믹스의 시체를 발견하고, 스텐스와 수전이 연인이었으며, 믹스와 스텐스가 파트너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믹스, 시드, 잭 등이 차례로 살해되는데. 당시 최고의 하드보일드 누아르로 평가받던 제임스 엘로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내 소설은 절대 영화화하지 못할 것.”이라던 작가의 호언장담이 무색할 만큼 뛰어나게 각색하고, 통쾌하게 연출했다. 할리우드 누아르 중 단연 앞장세울 만하다.

북아메리카 개척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는 ‘서쪽으로’였다. LA는 서쪽 끝 ‘천사의 도시’. 영화배우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실제 유명 스타들이 대형 저택에 살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각종 강력 범죄와 추악한 비리가 도사리고 있다. 그게 자본주의의 ‘가면’과 ‘진면목’이다.

인트로의 내레이션은 LA가 지상 최대의 낙원이라며 그걸 지키기 위해 경찰이 밤낮없이 눈에 불을 켜고 근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모두가 프로파간다 혹은 위장이라고 영화는 고백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론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이원론이 비교적 현사실적으로 와닿는다.

양지와 음지, 선과 악, 부자와 빈자 등 동전의 양면이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이 영화의 테제이다. 버드는 ‘단무지’이다. 범인을 엮거나 얽어매기 위해서는 폭력이나 증거 조작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료애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 매우 폭력적이지만 의외로 순진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매춘부인 린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출세 대신 사랑을 선택한다. 욕심이 없고,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강하다.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이지만 LA에는 안 어울리는 순수한 인물이다. ‘삼국지’로 치면 장비이다. 에드는 원리원칙주의자이다. 경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오로지 법과 양심이 판단의 기준일 따름이다.

잭은 LA 그 자체. 스타 경찰인 건 임무에 적당히 충실하면서도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영리함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또 뇌물을 받을 줄 알고, 그걸 나눠 쓸 줄 안다. 합리주의자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으면서도 서늘한 건 우리가 애써 외면하지만 정치와 공권력이 그렇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가면(페르소나)을 쓴 채 살아간다. 가식일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카멜레온의 보호색일 따름이다. ‘배트맨’이나 ‘어벤져스’ 속 슈퍼 히어로들의 가면도 사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LA 경찰청이 비리 경찰의 죽음을 명예로운 순직으로 위장하는 것은 경찰의 생명력을 위해서이다. 만약 비리나 시스템의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여론은 들끓을 것이고, 그러면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불가피하다. 즉 현재의 간부들은 대부분 해고될 것이고, 일선 경찰에겐 제재가 강화될 것이다.

이런 추한 내면의 진실은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그는 영국 고전 경험론과 근대 귀납법의 창시자이다. ‘감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항해 연역법을 경멸하고 귀납법, 경험론, 그리고 과학의 우수성을 외쳤다. 추운 겨울 닭고기로 ‘냉장고 실험’을 하다 세상을 떠났을 만큼 학구적이었다. 그의 편지를 보자.

“저는 제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모든 공직을 포기하고, 깊은 곳에 놓인 진리의 광맥을 뒤지는 참된 선구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40대에 대법관이란 지위에까지 올랐다 뇌물 수수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비리와 아이러니의 표상이다. 이 영화는 현실에 수많은 베이컨이 있다고 웅변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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