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복지식당’(정재익, 서태수 감독)은 식당과는 상관없고, 장애인의 복지 문제에 관한 영화이다. 86년생 재기는 사고로 중증 장애를 입는다. 입원 중 홀어머니는 사망하고, 아들을 키우며 사는 유일한 가족인 누나 은주가 그의 병시중을 해 준다. 그런데 관계 기관은 그에게 경증(5급) 판정을 내린다.

한편 장애인 브로커 병호는 친한 후배 봉수에게 엄살을 지시해 2급 판정을 받도록 도와준다. 재기는 자신의 몸 상태와 다른 장애 등급 탓에 장애인 콜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도우미의 돌봄도 받을 수 없으며, 취업도 불가능해 절망에 빠진다. 그런 그에게 병호가 접근해 소송해 줄 변호사를 소개한다.

절망에 빠져 있던 재기는 구원의 빛을 발견한 것처럼 병호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다. 그는 대출을 받아 소송 비용을 대는가 하면 병호에게 빌려 주기도 한다. 병호는 은주에게 자신의 도우미 역할을 제안하는 등 그녀에게 흑심을 드러낸다. 변호사 측 사무장은 소송 결과 기각되었다고 연락하는데.

자신의 경험과 현실을 재기에게 녹여 낸 정재익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인 데다 배우들이 낯설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감을 준다. 이 작품의 두 가지 큰 특징은 장애인 대 비장애인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과 장애인의 복지 문제를 제도권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켜 질문한다는 것이다.

NGC의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하마 사체를 놓고 악어와 다투다 입을 물린 사자를 보여 준 적이 있다. 당연히 그 사자는 먹이 활동을 할 수 없기에 곧 죽었을 것이다. 장애를 입은 동물은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도태되기 마련이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회 복지 제도가 인격을 돕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지는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며,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는-최소한의 여유를 가지게끔-행복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즉 인간이 인간답게 기초적인 행복을 누리는 현실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복지는 부자와 강자보다 빈자와 약자에게 적용되는 게 마땅하다. 국가의 목표는 전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니까.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저마다 인권과 인격을 알고 있고, 또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사회 복지 제도가 발전된 것이다. 우리는 사자나 악어가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도 동등한 인권과 인격을 누리게끔 복지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권리에 따른 격조를 보장해 줘야 한다.

1등급을 받아야 할 재기가 5등급을 받는가 하면 멀쩡하게 뛰어다니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봉수가 2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행정 등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실감 나게 보여 주는 플롯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는 아이러니, 억견(doxa)이다. 모순투성이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말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이민 초기 현지에 정착하려고 안간힘을 쓸 때 같은 동포를 조심하라는 교훈도 엄존한다. 동병상련이라는 사자성어는 이제 같은 병을 앓는 처지의 ‘동료’가 가장 위험하다는 가르침으로 그 의미가 전도되었다. 세상에는 ‘병호’가 굉장히 많다.

사기를 당해 본 경험이 있는 자가 사기꾼이 된다. 결국 사기꾼은 더 뛰어난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케이퍼 무비들은 그렇게 시작하고 끝난다. 그런 아이러니를 가능케 하는 배경은 입법, 사법, 행정 관련자 등 정치권과 공무원의 독사(근거가 박약한 지식), 혹은 탁상행정이다.

병호는 타락한 사기꾼이지만 그런 자를 존재하게 만들어 주고, 잘 먹고살게 해 주는 것은 법 등 모든 제도의 허점이다. 서초동에 가 보면 왠지 죄다 사기꾼 같고, 경찰서 주변에서 서성대는 사람 대다수가 범죄자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3권은 분립만 되어 있을 뿐 공정하지 않고, 공무원은 탁상만 지킨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은 소수의 부자보다 다수의 서민들을 위한 기관 및 제도이지만 부자보다 서민들이 보험료를 더 잘, 그리고 많이-상대적으로-납부하는 게 현실이다. 각종 세금, 벌금, 과태료는 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서 아이러니를 ‘남을 기만하는 변장의 기술.’이라고 적었다.

언어적 아이러니는 역설을, 상황적 아이러니는 의도치 않은 정반대의 결과를 각각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제도’를, 공무원은 ‘국민에 봉사하는 공직자’를 각각 뜻한다. 장관은 각 부처 공무원들의 책임자, 국무총리는 장관들의 책임자, 그리고 대통령은 그 최종 책임자이지 나라의 주인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자본이 지배하는 구조를 말한다면 민주주의는 분명히 국민이 군림하는 체제를 지향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에서 급여를 받아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민의 피고용인일 따름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국민들은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거나 충실하게 근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법정에서 진술하는 시퀀스를 수미상관으로 구성한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는 주인공 재기와 악당 병호의 대립 구도를 상업적으로 내세우지만 사실 예술적 구도로써는 부조리하고 아이러니컬한 사회적 제도를 비판한다. 재기는 한 번 쓰러진 약자가 절대 再起할 수 없는 이 현실을 반영한 반어법이다.

재기의 고군분투, 그리고 병호와의 대립 구도는 누아르적 분위기를 풍긴다. 그가 이 불친절한 사회에 살아남고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형식상으로만 도울 뿐 실질적으로는 외면한 사회의 문턱을 웅변하는 마지막 시퀀스도 누아르이다. 과연 ‘남을 기만하는 변장의 기술자’는 누구일까?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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