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영화 <버닝>에서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라는 말이 나온다. ‘리틀 헝거’가 인간의 기본적인 결핍을 채우려는 본능적인 욕구라면, 후자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좀 더 거시적인 의미의 욕구라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에 가까운 인생을 산 것 같다.

그렇다고 필자가 기이한 인생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위해 일을 하고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최대한 줄이면서 살려고 노력은 했던 것같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기가 왔다. 생계를 위해서 끌려가는 삶이 아닌 주도적으로 삶을 이끄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졌다. 풍족한 형편이 아니어서 당장 일을 관둔다는 것이 걱정은 되었지만, 저 깊숙한 나의 무의식 속에서 “더 이상 이건 아닌거 같다” 라는 소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몇 년전인 30대 후반즘 전조현상이 한 번 있었다.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물음을 나에게 던지게 된 것이다. 몇 달을 고민하다 어느 날 저녁 술한잔을 하면서 또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인생을 살고싶니? 아니 어떤 노후를 보내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니?” 몇 달을 던진 질문에 그날은 감사하게도 답이 왔다. 공부하고 글쓰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치 유레카를 외치듯 나는 환희에 온 몸이 떨렸다. 어릴 적 글쓰는 걸 좋아했지만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포기했었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그 중간과정은 어떻게든 풀려가겠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이 밀려왔다.

철학을 전공할때는 몰랐는데 시절이 지나고 보니 철학이나 심리쪽 서적이 읽고 싶어졌다. 어느날 서점에서,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던 융의 책을 하나 집어 들었는데, 표지에 이런 문구가 나를 확 잡아당겼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또한 그 무의식적인 여러 조건에 근거하여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게 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서 이것 저것을 준비하던 중 실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후배랑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후배는 내가 공부하고 싶은 커리큐럼이 실제 대학원에서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뇌과학적인 실험이라는 것이었고 나처럼 나이든 학생은 교수들이 싫어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나의 꿈은 좌절되었다.

목표를 정하고 달렸는데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상황이 되었다. 어찌할바를 몰라 몇 달간을 물음을 던졌던거 같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대상에게 말이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영화속에서 생길 법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굵직한 목소리로 “너에겐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 것이다” 식의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융을 포기할 수 없어 동영상을 검색하던 중 운명적인 단어와 조후하게 되었다. 그 단어는 바로 <MBTI>. 성격검사 유형인 mbti는 융의 성격이론을 기본으로 하는데, 융은 동양의 음양오행에서 그 틀을 채용했다는 사실이다. 그 날로 필자는 명리학 공부에 뛰어들었다.

융이 말하는 무의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나니, 내가 왜 그 시절에 인문학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명리학에 심취했는지 자명하게 이해되었다.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해당하는 4개의 기둥과 8개의 글자뿐만 아니라 10년마다 바뀌는 대운의 행로가 모두 무의식인 것이었다.

결국 무의식이란 우주 저 멀리에서 갑자기 나타나거나 깊은 심연에서 떠돌다 내게 불쑥찾아오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내 안에 코드화되어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인 것이었다. 필자가 원하는 나의 노후의 삶도 이미 코드화되어 있었는데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끌어당김으로 작용해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 오경아 비엘티 아케아 대표

[오경아 대표]
건국대 철학과 졸업
전 수능영어강사(번역가)
현 비엘티 아케아 대표
현 교환일기 대표
현 세렌 사주명리 연구소 학술부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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