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인간은 한 권의 책과 같다고 했다. 누군가 펼쳐서 읽어주기를 바라는 존재란 의미다. 모든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밀스러워서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스토리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너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중적 존재다.

책 중에는 표지와 제목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책이 있는가 하면, 너무 평범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책도 있다. 하지만 모든 책의 목적은 전시용이 아닌 읽힘용이란 사실이다.

명리용어 중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일컫는 것이 ‘상관’이다. ‘상관’이라는 말 자체는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정한 규범이나 제도를 가리키는 ‘정관’을 상하게 한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만큼 평범함과 규격화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상관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탁월하고 순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많이 받는 직업을 가지면 그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보여진다는 것은 양면성을 지닌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도 있지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특징은 상관의 긍정적인 측면이지만,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런 부정적인 부분을 인지하고 겸손한 태도와 언어를 구사할 경우에는 빛이 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특징의 상관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표지나 제목을 더 화려하고 요란스럽게 꾸미는데 재주가 있다 하겠다. 하지만 이쁘게 치장하는 행위가 반드시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거나 사랑을 받기 위한 행동은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받는 것일수도 있다. 이왕 지사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관심을 받는게 낫지 않겠는가.

▲ 사진 출처=픽사베이

춤을 추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등등의 예술적인 행위를 반드시 상관이 있어야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사주에 상관이 없고 ‘식신’이 있을 경우에도 비슷한 직업군에 종사할 수 있다.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노출증을 가지고 있는 ‘관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관을 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동양권 사회에서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행태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되야 한다는 생각이 많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은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식신은 그에 따르지만 상관은 거부하고 반항한다. 어떤 집단의 내부고발자들이 바로 상관의 전형인 사람들이다.

형제자매격인 식신이 지속성과 안정감이 있는 것에 비해 상관은 변화무쌍하고 불안정한 측면이 많다. 원래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고 변화무쌍한 것이 아닌가. 좋을때는 너무 좋아서 아무런 계산을 하지 않고 또 살짝만 서운해도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는 상관. 순간의 욕망이 불러올 대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 순간만을 위해 타오르는 불꽃처럼 말이다.

그 순간에 아름답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사람이 점으로 살수는 없지 않은가. 점이 만나 선이 되고 선이 면을 만드는 것이 삶이다. 순간도 아름답고 선으로 면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상관의 숙제일 듯 하다.

▲ 오경아 비엘티 아케아 대표

[오경아 대표]
건국대 철학과 졸업
전 수능영어강사(번역가)
현 비엘티 아케아 대표
현 교환일기 대표
현 세렌 사주명리 연구소 학술부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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