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호의 시시콜콜 경제] 담배 연기가 세금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발암 덩어리지만 정부에는 연간 10조원 정도의 수입이 된다.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은 연간 약 7조원 규모였다. 올해부터 담배 가격이 갑당 4500원으로 인상되면서 약 2조8천억 규모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갑당 3318원으로 세금을 인상하자 담배 값이 오른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조치이지 증세는 아니’라고 말한다. 얼핏 맞는 말 같다.

올 연초부터는 근로소득자의 연말 정산이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고 있다. 소득공제 대상 항목들을 일부 세액공제로 바꾸는 조정을 하자 세금을 더 내게 되는급여생활자의 분노가 추운 날을 덥히고 있다. 일종의 조세저항이다. 예상되는 추가 징세 규모는 약 9천억 정도로 당국자는 추정한다. 거센 투명지갑들의 저항에 정부와 여당이 부랴부랴 대책을 세운답시고 분주하다. 법을 개정해 추가 징수한 세금을 5월에 일부 환급(약2천~3천억원 추산)하는 안을 주물럭거리고 있다. 조세 법률이 누더기가 되고 조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하는 일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연말 정산과 관련해 당국자들의 발언은 말의 성찬이다. 2013년 입법 과정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은 ‘거위가 아프지 않도록 거위 털 하나를 살짝 뽑는 일’이라고 엉너리를 쳤다. 9천억원 짜리 깃털이다. 올해 민심이 요동치자 현 청와대 경제수석은 ‘세금의 구조조정이지 증세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얼핏 들어서도 맞는 말 같지 않다.

바람은 폈지만 불륜은 아닌 썸 타기, 증세
시중에서는 이를 빗대 ‘바람은 폈지만 불륜은 아니다’, ‘때리기는 했지만 폭력은 아니다’라는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 정작 화난 민심은 ‘증세 안한다더니 왜 나만 내?’로 쏠리고 있다. 기업들의 법인세 인상, 고소득 전문직들의 적정한 징세, 고소득 급여자의 세율 조정에는 별반 관심 없고 깃털 뽑기에 바쁜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한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30%초반으로 떨어졌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자부 관료와 지자체다. 주민세와 영업용 자동차세 인상을 추진해야 되는데 납세자의 끓는 분노에 눈치만 보고 있다. 출석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손들고 나서야 하냐는 시기를 저울질 하느라고 좌고우면한다. 국민들이 볼 때는 복장 터지는 일이다.

복장 터진다라는 말은 불교에서 유래한다. 불상을 만들어 사찰에 안치하면서 불상의 배 안에 사리와 불교 경전을 넣는 것을 복장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장이 고려 후기에 가장 성행했다. 불자들에게는 불상 안에 들어있는 사리와 경전이 부처의 육신과 정신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복장물로 사리, 경전뿐아니라 왕족과 귀족들이 희사한 금은보화가 더러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절에 가면 대웅전에 모셔져있는 불상의 엉덩이 부분은 이 복장물을 넣고 뺄 수 있는 뚜껑 형태로 되어 있다. 옛날 도둑들에게는 수지맞는 장물이었다. 스님과 불자들에게는 복장 터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각종 증세로 백주대낮에 코베기 당한 중산서민들은 복장터질 지경을 넘어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조세부담이 과연 공평한가에 대한 불만
왜 국민들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 박근혜 정부가 세금에 대해 말장난을 부리며 꼼수를 쓰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증세는 없다’라고 선을 긋자 관료들은 따라 복창한다. 그러나 임기동안 135조원 규모가 투입되는 새로운 복지지출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돈이 턱없이 부족한 거다. 그래서 징수가 손쉬운 근로소득자와 중산서민층에 대한 증세가 이뤄진 것이고.

▲ 사진=jtbc 방송화면 캡쳐

기업의 법인세는 깍아주면서 세수 부족분을 유리지갑인 근로소득자에게 덤터기 씌운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고소득자가 많은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탈루되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우리가 봉이냐는 투명지갑들의 저항에 정부 당국자들은 세목 신설이나 세율의 인상은 없으므로 증세가 아니라는 논리만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돈을 먹기는 했는데 삼킨 것은 아니다’라고 오리발을 내미니 화가 나도 보통 난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산이나 소득 불균형이 가장 심한 미국 다음으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나라다. 1천8백만여명의 근로소득자 가운데 월 2백만원 이하의 소득자가 절반에 육박한다. 영세 자영업자 소득분포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복지지출을 확대해서 부의 재분배를 통한 소득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 이에 따라 중산서민층에 복지 수혜가 돌아가면 소비가 늘어나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도 호전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GDP 대비 10%에 못 미친다. 올해 복지예산이 115조원 규모다. 미국은 20% 정도이고 유럽 국가들은 30% 안팎이다. 복지지출을 확대해 중산서민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확보해 주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모든 국민에게 세금 더 걷어 복지국가로
이를 위해 모든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부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세금을 걷고,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적게 징수해 충분한 복지 혜택을 받는 형태의 복지국가로 가야한다. 우리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교육, 기초연금 등의 수혜를 받고 있다. 세금을 회피할 일은 아니다.

세금을 더 걷어야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 복지든 가능할 것 아닌가. 이에 대해 경제 주체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일은 정부 몫이다. 복지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밝히고 재원마련을 위한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정부 복지 지출 금액에 대해 국민들과 소통하고 각 경제 주체가 세금을 더 걷는데 합의를 해야 한다.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꼼수 없이 가야 한다. 그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정부의 역량이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현재 22%다. 그러나 기업에서 실제 걷는 세금(실효세율)은 16%이다. 2008년 20.5%이던 실효세율이 2013년에는 4.5%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같은 기간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은 4%에서 4.5%로 올랐다. 법인세 인상, 반드시 필요하고 먼저 해야 한다.
다음은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과세의지를 정책으로 강력하게 실천해야 한다. 근로소득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큰 부분이다. 소득이 많으면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조세 정의다.

그러한 증세와 합당한 과세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중산서민들의 증세를 말해야 한다. 세금을 내지 않고 복지의 수혜만을 받을 수는 없다. 그때서야 근로소득자와 영세 자영자의 복지국가를 위한 불가피한 증세가 ‘복장 터지지 않는 증세’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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