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원래 예술의 전당의 음악당 내에는 대규모 공연을 위한 콘서트홀과 소규모 공연을 위주로 하는 리사이틀 홀, 이렇게 두 개의 공연장만이 있었다. 사실 이 두 공연장의 중간 규모에 해당하는 ‘챔버홀’에 대한 요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있어 왔는데, 2011년 가을, 예술의 전당과 IBK 기업은행이 문화 예술 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마침내 중간 규모의 챔버홀(정식 명칭: IBK 챔버홀)을 완공하게 된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2주 전에 이 IBK 챔버홀에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다. 사실 국내외 ‘이름 난’ (클래식) 연주자들을 제외하자면 나머지 연주자들의 공연은 자기발전과 실적, 그러니까 공부로 치자면 논문발표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실적’이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이를 폄하해서는 곤란한 일이다. 무성의한 논문, 다른 논문을 짜깁기해서 내는 논문이 있듯 연주도 성의 없는 연주나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연주도 있다. 단지 실적만을 위해 이러한 유명 공연장을 대관한 후, 티켓을 오픈하지 않고 가족들만 초청하여 연주를 했다는 웃지 못 할 일화도 있다.
그런데 연주란 것이 참 재미있는 것이, 비단 전문 동료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고전음악에 다소 문외한인 일반의 관객들조차 마음에 와 닿는 연주와 그렇지 않은 연주는 금세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속일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필자는 어찌어찌 큰 사고(?) 없이 독주회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여 생활하던 중, 독주회의 같은 프로그램을 양평의 한 별장에서 다시 한 번 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대상의 청중들은 현직 음악대학 교수부터 음악관련 종사자, 그리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지만, 심오한(!) 고전음악 애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실) 한참을 망설였었다. 하지만 음악이 좋은 점은 연주를 통해 아름다운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겠나 싶어 오래 고민하지 않고 선뜻 제의에 응했다.

양평의 연주는 IBK 챔버홀 독주회 때보다 더 긴장됐지만, 결론적으로 좋은 분위기와 유쾌한 사람들 속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함께 했다. 곡의 중간 중간에 필자가 해설도 하고 손님으로 있던 이들이 저마다 나와 한 두 마디 이야기를 거들었는데, 모 아트홀에서 재직하고 있다는 분은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트홀에서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예술가들을 접하게 되는데, 음악가들은 그 중에서도 다른 예술가들과 굉장히 차별화 된, 독특한 형태의 고독을 경험하는 것을 봅니다. 음악이라는 시간(순간) 예술의 특성 때문에, 무대 위에서 독주를 하는 연주자는 오직 악기와 나, 둘 만이 존재하는 고독을 마주합니다. 이 고독은 연주자와 그 연주의 순간을 함께하는 청중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예술과 차별화되는 특징으로 존재합니다.”

그 손님의 이야기를 필자가 제대로 옮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주 중간의 그 분의 연설(?)이 필자에게 새삼스럽게 들렸다. ‘연주자의 고독’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며 다시금 음악의 특별함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라는 말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하고 더불어 사는 것이 소중하다 생각한다. 연주자의 고독은, 연주자라면 마주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해도 그 고독의 순간조차 함께 할 청중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평범한, 위로받지 못하는 고독으로 남을 것이리라.
무릇 사람은 사람을 어려워하고 귀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밤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경기도립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
유라시안 필하모닉 객원 악장
서울대학교 전공자 실기과정 강의

현) 상명대, 서경대, 추계예술대, 숭실대 교수(강의)
스트링 & 보우. 스트라드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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