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나가는 날이/ 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

은백색 물고기 떼를 거느려 남지나해에서/ 동해까지 거슬러 오르는 힘찬 유영이 아름다운 것도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마을로 돌아가/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맑고 때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강 마을에도 어린 시절부터 내게 길이 되어주던/ 별이 머리 위에 뜨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호젓한 바람 불어오리니 아무래도/ 나는 다시 강으로 가야겠다.   -도종환, ‘그리운 강’ 부분, 시집 <슬픔의 뿌리> 수록

[김자현의 시시(詩詩)한 이야기] 원래는 부산으로 바다로 가기로 한 모임이었다. 대학 새내기 때 4명이서 모임을 만들어 놓고 정작 “같이 부산을 가자, 부산을 가자” 말뿐인 말을 하면서 4년이 지났다. 학년을 거듭 더하면서 친구들은 각자 바빠졌다. 덩달아 각자 가진 시간의 조각도 점점 자잘해졌다. 맞추기가 더욱 어려웠다.

올해, 내 전역을 계기로 다시금 부산 여행의 불씨를 지펴보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막상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는 잠깐 떠나는 일에도 생각해야할 것이 괜히 많았다. 우리는 밀어붙이지 못했다. 대신 소풍처럼 설렁설렁 다녀올 요량으로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을 물색했다.

두물머리는 인천이며 오이도의 바닷가, 우이동 계곡을 제치고 선정된 행선지였다. 그곳을 택한 마땅한 이유는 없었다. ‘두물머리 어떠냐’는 의견이 던져진 뒤에 더 이상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는 우연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우리는 계획도 짐도 없이 가벼운 몸으로 떠났다.

지하철 중앙선 양수역
두물머리는 서울에서 가깝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지하철 중앙선을 타고 갈 수 있다. 용문방향 중앙선을 타고 가다가 양수역에서 내려 걸으면 멀지 않다. ‘양수’라는 역의 이름은 그 자체로 두물머리다. 순우리말로 ‘두물’ 이고 한자표기로 ‘양수兩水’다.

역에서 내려서 보니 우리 또래를 찾기 힘들다. 알록달록 물든 제각각의 등산복을 갖춰 입은 4-50대 이상의 어른들이 많다. 비가 어설프게 오다가 그치고 그쳤다가 다시 온다. 우산을 폈다가 접었다가 다시 피기를 반복하며 걸었다.

세미원(洗美苑)
최종목적지를 두물머리라고 한다면, 중간에 참새를 붙드는 방앗간처럼 발길을 잡아끄는 곳이 세미원이다. 세미원은 연꽃정원이다.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이라는 <장자>구절에서 이름을 따왔다. ‘물을 보면서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이다.

넓은 정원은 연잎으로 가득하다. 연은 저 혼자 딴 세상을 산다. 이따금 내리는 비에도 수많은 연잎은 끄떡 없이 의연하다. 비를 피하겠다고 우산을 받고도 곳곳을 비로 적신 사람과 달리 비를 피하지 않지만 물방울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연잎의 완고함은 끈질기다.

두물머리
세미원과 두물머리는 배다리로 이어진다. 여러 척 나룻배를 잇대어 다리를 놓았다. 배들의 개별성이 모여 하나를 이룬 다리 위로 사람이 건너는데, 걸을 때 발바닥으로 강물과 배가 맞닿는 출렁임이 느껴진다.

두물 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은 만나 한강을 이룬다. 북한강의 물은 금강산 옥밭봉에서 왔고 남한강의 물은 강원도 금대봉 기슭의 검룡소에서 왔다. 각각 흘러온 물은 일면식이 없지만, 초면임에도 두 물줄기의 합쳐짐은 고요하다. 애초에 그리하기로 된 일인 듯 다투지 않고 서로 스며서 하나가 되어 흐른다.

과거에 두물머리는 북적이는 포구였다. 강원도 산속에서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루 머물렀다가 서울로 들어갔다. 그러던 곳이 1973년 팔당댐이 생기면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배가 다니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자동차가 뱃길을 대신해 사람과 짐을 나른다.

뱃길로 쓰지 않는 지금, 이곳은 사진촬영의 명소, 심지어는 성지로 여겨진다. 동호회에서 무리를 지어 카메라를 짊어지고 온다. 대포 같은 렌즈를 장착하고 두물머리의 일출과 일몰 사이를 찍는다.

먹거리로는 연 핫도그가 유명하다. 연 핫도그집은 두물머리 나루터의 직전, 딱 배고픈 지점에 자리 잡았다. 세미원에서 한두시간을 걷고서 출출한 사람들이 너나없이 핫도그로 요기를 한다. 뱃길은 죽었지만 두물머리는 저 나름대로 업태를 변경하여 그 주변의 밥벌이를 돕고 있다.

내가 간 날은 흐려서 없었지만, 날씨가 좋으면 웨딩촬영도 많다고 한다. 두 강줄기의 합수에 사람의 결혼을 빗대어 찍는 사진이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오래오래 흘러가라는 뜻인가 한다. 그러니 아마 이곳에서 남긴 사랑의 약속은 값비싼 스튜디오의 것보다 차원 높지 않을까.

종일 걸은 거리가 적지 않았고 날씨도 습해 몸이 무거웠다. 우리도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근처 양수리 전통시장에 갔다. 파전에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중앙선 끝 칸 바닥에 앉아 졸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시인과 달리 우리는 ‘강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도무지 어쩔 수가 없었다. 멀리 멀리 가려다가 4년을 표류했다. 그러다 ‘본의 아니게’ 강으로, 두물머리로 갔다.

안 되는 계획을 붙잡고 있지 말고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하라’는 운명적인 조언이 아니었을까 싶다. 북한강, 남한강의 물이 서해바다로 가기까지 반드시 두물머리를 거쳐야하듯, 우선 두물머리 거쳐서 바다로 가라는. 그렇다면 두물머리는 필연적인 중간 충전소이지 않았을까. 그러니 시인의 말처럼, 아무래도 나는 다시 강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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