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사막

김자현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5.08.29l수정2015.08.3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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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 비가 내린다
빗물을 듬뿍 머금고
들녘엔 들꽃이 찬란하다
사막에 비가 내린다
빗물을 흠뻑 빨아들이고
사막은 여전히 사막으로 남아있다
받아들일 줄은 알고
나눌 줄은 모르는 자가
언제나 더 메말라 있는
초여름
인간의 사막
-정호승, ‘사막’ 전문,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

[김자현의 시시(詩詩)한 이야기] 내년엔 올해보다 450원이 오른 6030원을 최저시급으로 받는다. 경영계는 영세기업의 운영부담이 가중된다고 말하고, 노동계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호소한다.

최근의 최저시급을 둘러싼 논쟁에 정작 사람은 없다. 6030이라는 숫자들 주변으로 덧셈과 뺄셈의 말이 오갈 뿐이다. 그리하여 내년엔 그나마 450원, 이례적인 고액의 상승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450원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이든 부정적인 해석이든, 나는 이제 6030원을 내면 고용된 이들에 대하여 뽕을 뽑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구나 생각한다. 달라진 것이라면 올해까지는 5580원을 내면 뽕을 뽑을 수 있었는데 내년에는 6030원을 내고 뽕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뽕을 뽑는다는 말은 본전을 뽑는다는 말이다.(뽕=본本) 본전을 뽑는다고 하면 왠지 인격적인 느낌이 조금 더 들어서, 나는 굳이 속어인 뽕을 뽑는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어차피 돈을 줘야하니 하나라도 더 시키는 것이 이득이라는 말이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뽕 뽑을 권리에 대한 값의 비싸고 쌈을 다툴 뿐이다. 뽕 뽑을 권리가 애초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그 앞에서 무의미하다. 애초에 기대치만큼은 충분히 하고 있음에도, 알바생이 생각보다 일을 편하게 하면 손해 보는 것으로 여기는, 차라리 같은 일이라도 어렵게 했으면 싶어 하는 그런 분위기다.

청소노동자 이야기
학내 청소노동자와 학생들의 연대는 몇 년간 뜨거운 이슈다. 청소노동자들은 하청업체와 학교의 책임회피 속에서 유령처럼 존재해왔다. 그랬던 그들에게도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져야한다고, 그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여기저기에 대자보가 붙고 현수막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 미흡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부터 노동자들의 쉼터를 만드는 등 시설과 제도를 개선해나고 있다. 그러면 이제 그들의 노동환경이 나아졌다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을까.

대학 1학년 때 청소노동자분들과 하루일과를 함께 해볼 일이 있었다. 치우는 입장이 되고 보면 쓰레기통은 복잡하다. 전단지가 구겨져 버려진 위에 먹다만 음료수 캔이 던져진다. 그 위에 일상적으로 벗겨진 각종 포장지들이 쌓이고, 얼음만 컵 안에 남은 아이스커피의 잔해들도 버려지고, 갑작스런 기침에 튀어나온 누런 가래도 뱉어진다. 많이들 목이 마른 여름엔 유독 쓰레기봉투의 주변은 축축하고, 주변으로 금세 파리가 꼬인다.

버리는 이들은 무심하다. 등록금 내에 다 포함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지, 치움을 생각하지 않고 버린다. 같이 일한 아저씨는 말했다.

“학생들이 얼음 든 컵을 그냥 버리는 게 참 힘든 일이 돼. 쓰레기통 밑에 물 때문에 치우면서 옷 버리고, 복도는 복도대로 또 닦아야 하니 한번 할 일이 두세 번 일거리가 돼버리니까. 사소한 게 우리한테는 힘든 거야.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게 담배꽁초 버리는 통이 꼭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야, 그걸 통 옆에 바닥에 버린단 말이지. 그럼 우리는 또 그거 하나하나 줍는 게 일이지. 그런 거만 신경써줘도 우리 일이 훨씬 덜 할 텐데 말이지.”

인간의 사막
청소노동자들의 고됨을 덜어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우리’는 그들의 고됨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청소노동자들을 둘러싸고 그들의 임금과 처우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중에 쓰레기통 주변으로 흥건한 쓰레기 물에 대한 얘기가 없다.

시에서 말한 ‘인간의 사막’이 바로 이곳이다. 도무지 물기가 남아있을 틈을 주지 않는 곳. 임금, 제도, 시설의 비를 끊임없이 뿌려도 ‘고됨’의 사막화를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태도 속.

청소노동자들의 급여가 대폭 오르고, 쉼터가 확충된 상태라고치자. 내 부모가 그 안에서 청소 노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쓰레기통에 먹다만 음료를 버릴 수 있을까. 일하기 좋아졌으니 쓰레기물이 부모님의 옷을 적셔도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노동의 고됨에 대하여, 돈뭉치를 던진 후에 뒷짐을 지고 뽕을 뽑자고 말하지 말자. 그것이 나와 내 가족이든 타인과 타인의 가족이든, 돈과 노동이 교환되는 사이에 엄연히 사람이 서 있다.

김자현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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