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원클럽맨과 축구계의 낭만

오승종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5.08.30l수정2015.09.0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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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종의 입으로 축구하기] 올 해 초, 전 세계의 축구팬들은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구단 리버풀에서 소년 시절부터 27년간 뛰며 팀의 상징이 되었던 스티븐 제라드가 미국 MLS의 구단 LA 갤럭시로 가는 것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리버풀 팬들은 물론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리버풀에서 은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원클럽맨’ 제라드의 이적은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제라드는 리버풀의 주장이었으며 정신적 지주였고, 구단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리버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원클럽맨(One Club Man)이란 문자 그대로 본인의 커리어에서 오직 한 팀에서만 뛴 선수를 말한다. 원클럽맨은 소속팀의 색깔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즌 중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새로 들어온 신입 선수들이 현지에 적응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원클럽맨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팀이 흥할 때나 어려울 때나 그 자리를 지켰다는 점에서 소속팀과 선수 본인, 나아가 팀의 팬들에게 커다란 유대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팀의 이미지가 선수 한 명에게 압축됨으로써 팬들은 그 선수를 통하여 팀의 기쁨과 고충을 함께 한다. 팬들에게 해당 구단의 축구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현대 축구에선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명문 구단에서의 원클럽맨이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팀의 입장 – 미안, 하지만 팀을 위해선…….

먼저 구단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다소 잔인한 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축구계를 돌아가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자본’이다. 자본이 마련되어야 좋은 선수단과 코치진을 구비할 수 있고, 이것이 좋은 성적의 기반이 됨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 위주의 시스템은 명문 구단에서의 원클럽맨의 존재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한 구단에서 오래 뛴 나이든 선수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기량의 하락은 눈에 보이는데, 지금까지 구단에 몸 담았던 시간을 고려했을 때 연봉은 팀 내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 선수의 처분을 통해 두 세 명의 젊고 유망한 선수들의 연봉을 대신할 수 있다면 구단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명문 구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선수라면 일단 스타이므로 선수를 영입할 의사가 있는 구단은 눈높이만 낮춘다면 얼마든지 있다. 파는 구단에선 새로운 전력 보강이 가능해서 좋고, 사는 구단에선 자신들의 명성에 비해 유명한 선수의 영입으로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득을 볼 수 있다. 스티븐 제라드의 이적이 위와 같은 일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명문 구단에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결국 한 구단에게 ‘명문’이란 칭호를 줄 수 있는 것은 수 십 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구체적인 기록인 것이다. 때문에 구단들은 해마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좋은 성적을 위한 직접적인 준비를 선수단의 효율적인 운영에서 시작하게 된다. 아무리 한 선수의 존재가 앞서 언급한 긍정적인 역할을 가질 수 있더라도, 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할 때마다 나이든 선수(원클럽맨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의 존재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선수의 입장 – 말년엔 웃으며 축구하고 싶어요.

사실 이적이라는 것은 구단 혼자서 강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축구계는 기술 뿐 아니라 운영에 있어서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온갖 축구 협회와 에이전트, 심지어 변호사까지 관련하여 선수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즉 제아무리 구단이 효율적인 선수단 운영을 위해 선수의 방출을 결정지었어도 그 선수의 동의 없이는 쉽게 결정되어지지 않는 것이 이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클럽맨이 될 수 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이유는 축구 선수들에게 새롭게 떠오르는 ‘편한 말년 보내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중동 등 유럽의 일류 리그들을 제외하고라도 축구 리그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국가들이 있다. 해당 국가의 리그들은 전성기가 지난 스타 선수의 영입을 통해 리그를 홍보하고 자국의 팬들을 확보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 때 선수에게 제시하는 조건이 어마어마하다. 한 예로 원클럽맨은 아니었지만 슈퍼스타 데이빗 베컴의 경우엔 미국 MLS로 이적할 당시 MLS 전체 선수들의 평균 연봉의 44배가 넘는 650만 달러(한화 78억원)을 받았다. 이렇듯 유럽의 일류 리그에서 피 튀기게 시즌을 치르는 것보다 마음 편하게 축구를 하면서도 오히려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선수들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많은 유명 선수들이 미국행을 택하고 있는데, 자녀의 교육이나 주거 환경,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 등을 고려했을 때 미국만한 곳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에게 축구는 물론 그들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겠지만, 가정이나 일상적인 생활 역시 엄연한 그들의 고려 대상이 될 것임에 분명하기에 이와 같은 선택을 한 선수들을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한 선수가 명문 구단에서 선수 생활 전체를 보내기란 구단 입장에서도, 선수 입장에서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현대 축구의 흐름 속에선 예전과 같이 한 선수가 한 팀의 상징이 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라이언 긱스, FC 바르셀로나는 카를레스 푸욜로 인식되던 시절은 그리 멀지 않은 듯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축구계에도 예외 없이 찾아온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이 만든 이와 같은 변화는 결코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도 유지되지 않기를 바랄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필자 역시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앞으로 사람들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길 하나가 줄어드는 중이란 점에선 소소한 유감을 표하고 싶다.

오승종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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