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탱의 인간생활 관찰기] 논란은 동녘 출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하나의 게시글로부터 시작됐다. '아이유 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라는 게시글. 이 게시글이 올라오기 전의 <ZeZe>는 이어폰을 통해 나의 긴 통학시간을 위로해 준 노래였다. 하지만 <ZeZe>는 순식간에 ‘학대로 인해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섯 살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표현하는’ 노래로 변해버렸다.

아이유의 <ZeZe>에 대한 논란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앨범 아트에서 제제가 망사스타킹을 신고 핀업걸 자세로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ZeZe>의 가사인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 잎사귀에 입을 맞춰', '넌 아주 순진해 /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 어딘가는 더러워' 라는 가사가 5살의 어린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가사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아이유를 비판하는 사람은 이것을 보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금기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는 사회와 대중들이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은 최우선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소아성애를 연상시키는 노래를 예술로 포장한 것은 아이유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비판은 아이유가 정말 이런 의도였을 때 비로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유 측은 절대 제제를 성적 대상화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는 논란의 시작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금기’로 시작할 수 없다. 그녀는 그럴 의도도 행위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증명하고, 논쟁할 수 있을까? <ZeZe>의 가사는 은유적이므로 해석에 대한 주관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논란의 프레임을 ‘표현의 자유가 아동성애를 조장해도 되는가?’로 만들어 문제가 된다. 논란이 정당하려면 ‘아이유의 <ZeZe> 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시작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ZeZe>가 가지고 있는 소아성애 코드도 표현의 자유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은 해석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ZeZe>를 소아성애 코드를 가진 노래로 낙인찍는 것이다.

▲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동녘에서는 망사스타킹 신은 아이 제제를 보고 소아성애를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다리도 짧은 것이 양파망 같은 걸 둘렀다고 생각이 들어 웃기기만 했다. 동녘도, 나도 원작자가 아니니 대표성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우리는 그냥 해석할 뿐이다. 각자가 가진 성향으로, 가치관으로, 배경지식으로 말이다. 동녘출판사의 논란제기가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로 시작해서 아쉽다. 출판사가 <아이유님. 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라고 시작했었다면 더 건강한 논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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