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마의 세이보리 로그(Savory Log)] 사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식의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국물요리가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는 사골을 이용한 탕문화가 발달했다. 여름철 자주 먹는 냉면, 보양음식으로 사랑받는 도가니탕, 곰탕, 설렁탕 같음 음식은 무엇이 주재료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국물이 사랑받는 음식이다. 사골국물이 들어가면 육수에 깊고 풍부한 맛을 제공하기 때문에 요리의 품격을 한 층 높이는 역할을 한다. 고급 음식일수록 재료 자체의 맛에 집중한다고 보았을 때 사골국물은 꽤 고급스러운 재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골국물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고 깊은 맛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곳은 후추와 같은 향신료로 비린맛을 잡기도 하고, 조미료로 감칠맛을 추가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뼈를 사용한다. 일반 소비자는 잘 모르는 편이지만 데미글라스 소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소스는 양식 요리에서 기본 중에서도 기본에 해당하는 소스 중의 하나로 세계 5대 모체소스(토마토소스, 데미글라스 소스, 베샤멜, 벨루테, 홀랜다이즈) 중 하나이다. 버터와 밀가루를 볶아 갈색 루(버터와 밀가루가 합쳐진 형태)를 만들고 우스터소스(서양식 간장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와인, 향신료 등을 섞은 후 잘게 부순 소뼈를 태우듯이 바짝 졸인 후 육수를 붓고 계속 졸이는 과정을 몇 일간 반복한 후 채로 걸러내면 아름답게 색을 반사시키는 데미 글라스소스가 만들어진다. 양식의 스테이크소스, 일식의 돈까스에 많이 사용된다.

다양하게 다양한 인간 관계를 맺고 살다보면 특정인을 표현할 때 “진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다.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고 신뢰감을 가질 수 있으며 인간관계를 맺음에 있어 만족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자주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식이 진국이라 함은 먹었을 때 그 맛에 신뢰가 가고 그 음식이 표현해야 하는 맛을 제대로 살렸을 때를 지칭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시간 사골을 고아 만든 진국의 가장 큰 특징은 고소함과 묵직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볍고 쉽게 혀 끝에서 사라지는 인공적인 단맛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이 특징은 우리의 입맛을 만족시키고,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고급스럽게 해준다.

1. 하동관 - 명동
놋그릇에 올려져있는 맑은 국물은 아마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맛과 색을 지녔다고 평가할만하다. 사골국물이 가지는 한국역사적 의미와 이것이 제대로된 사골국물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맛의 가치가 합쳐진 하동관의 곰탕은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가치를 전달한다. 단일한 듯 하지만 복합적인 맛을 제공하는 국물은 고소함과 풍부함을 넘어서 온 몸에 따스함을 전달하는 플러스 알파의 수준이며, 국물과 같이 제공되는 차돌, 고기, 내포(내장을 포뜬 것)는 국물의 온기만큼의 부드러움과 탄력이 느껴지는 일체감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미리 담겨져 제공되는 밥은 국밥에 어울리도록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국밥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 한그릇에 담긴 국물과 고기, 밥 만으로도 굉장한 영감과 만족감을 전달한다.

곰탕의 고기는 여타의 곰탕을 먹어보았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다. 국물에서 표현되는 고소함과 풍부함을 차돌, 고기, 내포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포의 경우 대부분의 곰탕집에서는 별미의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조화롭지 않거나 요리에서 톡톡 튀는 느낌을 받지만 하동관의 고기는 곰탕과 매우 잘어울리는 식감을 제공한다. 또한 한 숫갈 떴을 때 그리고 한 입 넣었을 때 입에 거칠리지 않는 알맞은 크기는 손님에 대한 배려심까지 느낄 수 있다.

하동관의 곰탕은 먹고났을 때 배가 매우 편안하다. 아마 70년 세월의 고객들은 이제 노령의 남녀도 많을 것이고 그러한 이들을 배려하여 레시피가 변화 및 발전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기본적인 생각은 하동관의 곰탕이 표현하고자 하는 맛의 그림이 기본적으로 손님의 입과 배를 동시에 만족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하동관의 분점이라고 오해를 하고있는 선릉쪽 하동관은 이런 측면에서 꽤나 다른 맛을 표현한다. 내포 뿐만이 아니라 찬으로 나오는 김치도 다소 튀는 맛을 가지고 있어 조화로움이 떨어진다.

2. 이남장
많은 설렁탕 맛집 중 이남장에 대해 쓰고자 하는 이유는 어릴적 향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적 주말에 부모님은 이남장 근처의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즐기셨고, 나 또한 그 곳이 내 놀이터인 것처럼 테니스공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 운동이 끝나면 종종 가곤 했던 식당이 바로 이남장이었는데, 두껍고 큼지막한 고기덩이와 고소한 국물, 식탁 옆에 산더미처럼 올려져있는 파는 나에게 설렁탕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주었다. 비록 프림 파동으로 인해 일정 기간 동안 휴지기를 두었지만, 다시 설렁탕을 찾았을 때도 그곳은 이남장이었다. 비교적 최근이었지만, 그 모습과 맛은 여전했다.

곰탕의 관전포인트가 오롯이 국물에 가있다면 설렁탕은 국물 뿐만이 아니라 안에 들어가는 고기의 질과 식감, 같이 곁들여먹는 파와 김치, 깍두기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는 두께감이 있는 고기를 선호하는 편이고, 국물에 넣고 잠시 후 밥과 함께 먹는 파는 약간은 쌉사름하지만 단맛이 어우러지는 것을 선호하며, 김치와 깍두기는 약간은 익혀 단맛과 아삭함이 공존하는 숙성도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니즈가 맞아 떨어지는 곳이 이남장에 해당한다.

맑은 국물과 고기향이 느껴지는 설렁탕은 곰탕이 주는 사골의 맛과는 명백하게 틀리다. 출발지는 같았지만, 분화를 계속하면서 설렁탕은 고기과 육수의 조합으로 곰탕은 육수를 중심으로 고기와 내장을 곁들이는 형태로 발전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설렁탕과 곰탕이 동일한 사골국물요리라고 분류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요리가 전달하는 만족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3. 팔복도가니탕
도가니탕의 국물은 곰탕과 설렁탕의 국물보다 젤라틴이 풍부하고 점성이 높다. 젤라틴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어 보양식의 개념이 더 강하다. 고령으로 갈수록 단백질 섭취가 필요한데, 젤라틴은 단백질 섭취를 손쉽게 하여 건강유지에 도움을 준다. 또한 연골을 사용하여 국물을 내면 미네랄 등이 풍부하기 때문에 칼륨섭취에 도움을 준다. 현대인이 나트륨 섭취가 많은 편임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칼륨, 마그네슘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건강식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팔복도가니탕의 매력은 이러한 보양식임을 손쉽게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별도의 첨가제의 느낌은 나지 않고, 상당한 시간동안 뼈와 연골을 고아 국물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나게 하기 때문에 매우 직관적인 특징을 제공한다. 이곳은 통도가니탕이 트레이드마크이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도가니 한 입을 배어물고 오물오물 씹으면 고소한 맛과 함께 입이 끈적끈적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는 국물도 마찬가지로 식으면 식을수록 묵이 되는 듯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특별한 광고나 마케팅을 하지 않았던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약 12년전에는 문전성시는 아니였지만, 해를 달리하면서 손님들이 많아자고 있고 이제는 어느시간에 가도 많은 손님들이 이곳의 진국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이 표방하는 정직한 맛은 먹었을 때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사랑하는 손님들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케터 윤현탁]
버거킹 마케팅팀 프로덕트 매니저/브랜드 매니저
한솥 마케팅팀 커뮤니케이션 파트 과장
현) 한국하인즈 마케팅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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