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탱의 인간생활 관찰기] 2015년 12월 18일 16시. 나는 이제는 쓸 일이 없을, 여섯 자리의 학번이 적힌 시험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여느 때와 달리 그날은 차갑지 않았다. 그저, 간간이 바람만 불었다. 학기의 마지막 날. 학교는 고요했고 공기는 스산했다. 나는 하릴없이 교정에 앉아 이젠 돌아갈 수 없을 감정과 기억들을 떠올리려 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길고 긴 노래도 도돌이표를 지나 피네(fine)로 향하듯 1, 2학년의 경쾌하고 아름답던 멜로디는 마지막 4학년의 단호하고 막막한 멜로디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난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그때부터 난 자기비하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자기소개서가 요구하는 질문은 공란인 채로 무심한 커서의 깜빡임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 무한의 깜빡임은 내게 묻는 듯했다. 넌 대체 26년간 뭘 한 거냐고. 또 내가 성장해 온 긴 시간을 2주 안에 담아낸 서류의 결과가 내 미래의 20년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무기력함에 온종일 우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이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내 동기들도 함께 힘들어하고, 취업했던 선배들이 그러했다. 이 감정은 나만의 우울함이 아닌, 20대 중반에 들어선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 역시 경험한 감정일 것이다. 이 글은 나와, 나의 감정을 함께 느꼈을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가다.

내가 처음으로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을 때, 지금의 대학교와 전공,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 목표, 여정에 대해서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과학자와 비평가를 꿈꿨던 나는 지금은 홍보 관련으로 직무를 쓰고 있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막상 해보니 잘 맞는 것이 없었고, 생각한 대로 이뤄진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았다.

생각해보면 매일 예상대로 바뀌는 것은 신호등밖에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이 정차하기로 약속한 시각도 매일 조금씩 달랐다. 기상청 슈퍼컴퓨터도 가끔은 틀렸고, 알람을 많이 맞춰도 지각할 때도 있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것도, 우리의 의지가 들어간 행동도 무수히 많은 변수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삶은 불안정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불안정했다.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것은 아무리 마음을 바로잡아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내일을 걱정하고, 대비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이란 원래 예측할 수 없기에 기대되고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복권도 원래 발표 전날이 가장 재미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린 매일 매일 내일 일어날 일을 기대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예측한 대로 흘러간다면 우리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들도 모두 현실로 일어날 것이다. 내일모레가 정해져 있는 삶을 우린 만족해하며 행복해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나’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를 만든 것은 합리적이었던 수많은 선택과 치열하게 살아왔던 과거의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는 많은 과제와 시험을 보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살았다. ‘이걸 어떻게 하지?’라고 한숨 쉬며 했었던 일들은 이제 모두 끝나고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았다. 우린 지금까지 충분히 힘들었던 일들을 이겨냈다. 26년간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니, 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할 수 있을 만큼만 열심히 살고, 힘들면 잠시 쉬자. 잠시의 휴식이 우리의 미래를 망칠 만큼 우리는 나약하게 살지 않았으니까. 나를 선택한 길을 믿어보자.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들은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그런 중요한 선택이 아니다. 대학교 처음 입학했을 때의 기쁨이 첫 중간고사에 대한 압박감으로 금방 잊혔던 것처럼, 취업도 막상 다가가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큰 관문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은 사실은 여닫는 문에 지나지 않았던가.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천천히, 우리가 선택한 길을 걸어보자. 어떤 결과든, 지금의 시간은 우리에게 의미 있었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어보면서. 내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대사로 글을 끝내고 싶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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