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봄이 왔어요.

따사로운 햇살이 머리 위에 내려 앉아
제 검정 머리를 갈색으로 빛나게 하는
봄이 왔어요.

겨울 내내 부끄러워 몸을 숨겼던 꽃봉오리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봄이 왔어요.

할머니 기억 속엔 여전히 꼬마인 제가
뾰족구두를 신고서 교정을 거닐 면,
살랑대는 바람에 치마 끝이 나부끼는
봄이 왔어요.

할머니가 항상
내 강아지 이렇게 삐쩍 말라서 어이할꼬 매만지던
제 두 뺨이 살굿빛으로 물드는
봄이 왔어요.

할머니가 해주시던 달걀 프라이의 노른자만큼
샛노란 개나리가 지천으로 깔린
봄이 왔어요.

할머니, 그 곳에도 봄이 왔어요?
너무 좋아서 꿈에도 얼굴을 안보여주실만큼
아리따운 봄이 왔어요?

할머니,
할머니가 없는 이 하늘 아래에도,
어김없이 또
봄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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