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형의 철학과 인생] '서울대 A+의 비밀'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소위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수재들만 모이는 서울대학교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 비법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나도 그 비밀을 파헤쳐서 꼭 높은 성적을 받으리라 다짐했다. 모든 대학생이 원하는 A+로 향하는 지름길은 무엇일까.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 사이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그들 모두가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말씀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필기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수님의 농담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메모했다. 강의 자체보단, 시험공부를 위한 자료수집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내가 다니는 강원대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교수님이 입을 떼면, 여기저기서 키보드 타이핑 소리가 들린다. 상당수 학생들이 노트필기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다. 분명 본말이 전도됐다. 필기는 수업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 아닌가.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에서 비상식이 이따금씩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다. 자신의 노력과 실력을 검증해주는 게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라면 수업의 본질도 훼손된다. A, B, C로 성적을 산출하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부작용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치환할 수 없는 순수한 가치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높은 성적보다, 강의시간에 교수님과 눈을 맞추면서 소통하는 즉, 생동감 넘치는 수업분위기가 더 소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성시대라고 하지만 획일적인 잣대로 집약되는 집단성의 폭력에 우리는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성적표라는 객관성을 얻기 위해,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수업참여를 경시하는 태도가 그렇다. 

이는 객관과 주관의 문제로 추상화시킬 수 있다. 명예나 지위와 같은 것들은 타자가 관여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가치를 얻기 위해 자신의 견해나 관점을 종종 숨긴다. 예를 들어 보자. 취업면접에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보단, 면접관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한다. 또 승진을 하기 위해서 상급자에게 아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제삼자에게 친절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위선적인 행동도 한다. 이렇듯 주관이 없으면 타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노예적인 삶을 살게 된다. 삶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닌가.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