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일 청춘칼럼] 모두가 공감하는 비밀들이 있다. 그 비밀들만큼 우리의 윤리와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기 좋은 게 또 있을까. 프라이머리의 ‘Don't be shy’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이제껏 피해왔던 이야기다보니 손끝이 멈칫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한 번쯤 있었던 이야기 아닐까. 나는 몇 년째 만나고 있는 내 가장 친한 이성 친구에게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설렘을 느끼곤 한다.

여자들을 보고 있으면 미술관의 그림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충만해진다. 걸음걸이와 실루엣, 머리카락과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그 아래 매일 바뀌는 옷의 조화. 짧지만 얇은 다리의 야무진 걸음걸이부터 두껍고 긴 다리의 시원함까지(당신들의 콤플렉스는 의외로 당신만 모르는 치명적인 매력일 때가 많다). 바싹 몸이 다가왔을 때 바람처럼 풍기는 예상치 못한 향기와 또렷해지는 말 한 마디. 구강구조와 혀의 길이에서 만들어진 각자만의 미세한 발음차이, 조그만 입의 오물거림과 큰 입의 화사한 미소, 대화 주제에 따라 변화하는 목소리, 그리고 - 대화를 이어가는 명쾌한 논리와 가치관, 그 사이에 간간히 묻어나는 사랑스러운 방어기제까지. 이 모든 것들의 조화와 부조화에서 터져 나오는 매력들을 곱씹어보고 있으면 어느 여자를 보든 여느 명화들을 감상하는 것 못지않은 충만함이 밀려온다. 신이 만든 육체와 인간이 만든 내면이 조화된 완벽한 피조물.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말을 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사랑스러움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가변적인 완전체. 그 수많은 여자들 속에서 내 친구 H는 내가 손꼽는 가장 애틋한 그림 중 하나다.

그녀에게 이 사실을 한 번만 말했다. 스무 살 때, H는 남자친구와 싸우고 내 자취방에 앉아있었다. 나는 말하면서도 당황스러워 손을 허우적대며 간신히 말했다. 내게는 어릴 때부터 갤러리처럼 마음속에 품어두는 여자들이 있어, 절대로 이성으로서 널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안에 너도 있고, 나는 너가 너만의 매력을 알고 너의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어, 걷는 모습부터 말하는 모습, 숨소리까지 너의 모든 것들을 볼 때마다 사랑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남자 말이야. H는 내 말이 끝나자 울음을 꾹꾹 누른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좀 피고 올게 잠시만.” 나도 모르게 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참아냈다.
‘평소에는 내 방에서 잘만 피웠잖아.’

H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참 많았다. 그녀의 매력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은 물론이고 인정도 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의문이 든다. H와 나는 분명한 친구다. 둘 사이에 야릇한 기류가 흐른 적은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연인으로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름답다는 ‘감상’마저도 친구라는 이유로 스스로 덮어버리며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언제부터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을까. 우리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찬미하는 것마저도 바람이나 문란함이라는 전혀 다른 문제 때문에 억누르고 있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우연한 기회가 닿아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을 인터뷰했다.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는 여자가 좋아서,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죽을 것만 같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짧게 덧붙였다. 그날 밤, 학교에서 열린 학과통폐합 간담회에서 H를 만났다. 먹고 살 걱정과 공주까지 다녀오느라 죽을 것 같다는 불평을 늘어놓던 우리는 각자 잡아놓은 약속을 위해 헤어졌다. 돌아서는 H의 뒷모습과 찰랑이던 긴 머리는 어렴풋한 가로등 빛을 받아 자연스럽게 예뻤다. 총총거리던 걸음걸이는 어둠속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나태주 시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의 관계는, 매력을 부정하기보다 그걸 인정하고 다른 관계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할 때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예술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인간성이 발전해 온 역사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도록 신중한 명제와 전제들이 달려오며 발전했다. 우리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숙고해야할 문제들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수천가닥의 문제들 중 하나로서, 우리는 관계라는 개념을 아직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 아름다움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 입체적 인물이 각광을 받은 지 200년이 되어가지만, 정작 실생활에서 우리의 관계는 단편적인 윤리 아래에서 평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수많은 모습들이 섞여있는 하나의 인간에게서, 우정이 아닌 매력과 아름다움, 설렘을 느끼는 건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문란함이나 바람이라는 제법 먼 문제 때문에 지극히 작고 자연스러운 감상이나 대상으로부터 받은 느낌마저도 부정해야 한다. 특히 아이돌들을 보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매력을 느끼는 일과 사랑을 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휴대폰의 전화번호 목록에 있는 수많은 친구들 중, 우리가 동일한 감정을 느끼는 친구들은 단 한 쌍도 없다. 모든 사람들은 다르고, 우리가 그들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흔히 말하는 ‘우정’이라는 단일한 감정 안에서만 존재하기 힘들다. 어쩌면 두 사람의 관계 안에는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별개로 공존할 수도 있고, 존경심이나 보호심리, 경쟁심 등이 섞여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관계 사이에 우정만이 있다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우리는 친구가 되기 힘들다며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는 게 아니라 그 사실을 인정하고 둘 사이에 있는 감정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더 잘 지켜나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들을 더 배워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긴 글 끝에도, H와 나 사이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욕만이 오갈 거다. H가 커다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딥 퍼플의 노래를 베이스로 치던 모습과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던 순간 물씬 밀려왔던 감정을 말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H와의 행복한 시간들을 어떻게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조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 같다. 그리고 친구와 잘 지내기 위해 쌓은 그 방법이, 언젠가 우리의 윤리와 현실의 괴리를 이어주는 조그만 다리로 이어지길 조심스럽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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