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최민정 칼럼니스트(인하대 풍경)

[최민정의 태평가] 볕 좋은 날이면 캠퍼스 잔디밭에는 둥글게 모여 앉아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학교 사람들은 그것을 잔디막걸리, 일명 '잔막'이라 부른다. 3년전이었다면 나도 역시 그들 틈에 껴 잔막을 즐겼겠지만, 지금의 나는 저러다 피부병이 걸리진 않을까하며 고개를 젓고 그냥 내 갈길을 간다. 3년만에 사람이 이렇게 푸석해진다. 팝콘처럼 가지위에 흐트러진 꽃잎들을 봐도, '벚꽃이 피는거 보니 벌써 중간고사가 다가왔구나' 하고만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은 이미 봄에게 동요되어 버렸다. 봄은 살랑살랑 가슴을 간지럽히는 참 요망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글자 위로 고스란히 내려 앉는 봄 햇살 때문에 책장을 도저히 넘길 수 없고, 무채색의 옷만 입던 내가 파스텔 빛의 옷을 집어 들게 만든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지는거 보면 말 다했다.

온갖 냉정한척은 혼자 다 하던 나는 봄의 아름다움에 홀랑 넘어가버렸다. '봄'을 발음할 때에 'ㅗ'에서 입이 동그랗게 모아졌다가 'ㅁ'에서 목젖이 울리는 느낌마져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만큼 들었으면 지겨울법도한 봄 노래가 지겹기는 커녕 흥얼흥얼 입가에 맴돈다. 여태껏 스무번도 넘게 만났고, 앞으로도 수 없이 마주칠 봄이지만, 왜 유독 이번 봄을 집착 수준으로 사랑하게 되었을까. 한장면이라도 놓칠세라 눈 앞에 스치는 각각의 봄을 오롯이 눈에 담으려한다. 난 아마 대학생 신분으로 맞는 마지막 봄을 보내기 싫은가보다. 내 스물넷의 봄도 아름다울까.

잔망스러운 봄은 상념에 잠겨 있으면 마치 그러지 말라는 듯이 햇살로 안아주고 바람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러니 미워할 수가 있나. 이미 여름이 살짝 묻은 봄이 온전히 여름으로 물들기 전에 우리 모두 봄을 만끽하자. 꼭 멀리 나가야만 봄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니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살도 길가에 핀 꽃도 모두 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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