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방송화면 캡처

[정성관의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慧眼)] 선거는 그것이 갖는 많은 단점과 실망스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매 번 나름 의미있는 잇슈와 사회적 의제들을 표출해 왔다.평소 같으면 무시됐을 의견들, 선거전에는 잠잠하게 가라 앉아 알 수 없었던 표심들이 선거의 결과로 드러나면서 그때 마다 민의의 일면 또는 전면을 보여주곤 했다. 선거의 결과를 가지고 여소야대니 여당의 압승이니 의외의 결과니 하는 해석을 내 놓지마는 그 저변에는 항상 ‘집단 지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동통의 생각들이 깔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이번 총선도 그런 결과였다. 이번 총선의 결과로 여소야대가 이루어 진 것이 잘됐다 또는 잘못됐다의 얘기가 아니라 적어도 지역주의 타파라는 민족적 과제 해결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과 강남 비 강남 같은 획일적 구분이 무너질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모처럼의 선거결과 였다. 딱히 그렇게 원했던 것은 아니었겠으나 적어도 모양상으로는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지 않고 원내 1당이 될 수 있다는 위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 그것이 우리의 집단 자각이 이루어낸 이번 선거가 갖는 역사성이 아닐까 한다.

미국의 대선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샌더스의 돌풍은 힐러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잠복했지만 트럼프의 강세는 우리가 생각하듯 해프닝이 결코 아니다.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선거를 치르고 그 와중에서 무겁게 투표해온 우리 유권자들과 달리 미국 유권자들은 선거를 축제처럼 치른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주류 언론들에 의해 돌출적이고 공격적이며 폐쇄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되면서 마치 괴물처럼 인식되는 트럼프를 많은 미국민들 특히 백인들이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는 괴물이고 그를 지지하는 공화당 보수진영의 많은 백인들의 생각도 모두 틀린 것인가.

그들은 왜 괴물 같은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그를 지지하는 미국 공화당내 백인들은 과연 이번 선거를 축제같은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최근 SNS를 통한 뉴스의 유통은 주류언론의 뉴스 기능을 능가 하고 있다. 주류언론들이 트럼프의 돌출적 발언이나 찡그린 표정을 잡아 그를 괴물로 묘사하고 있는 동안 SNS에서는 트럼프가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미국의 보수적 백인들이 그를 지지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주류 언론이 알게 모르게 또는 작위적으로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의제를 끌어가려고 애 쓰는 사이 SNS에서는 누구의 작위도 없이 많은 생각과 팩트들이 쏟아져 나와 읽는 이들이 스스로 의제를 만들고 선택하고 판단하게 한다.

최근 페이스북에는 트럼프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역사학자 이병한씨가 쓴 “어쩌면 트럼프 보다 힐러리가 더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컬럼이다. 약술하자면 많은 수의 미국 백인들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고 더 이상 세계의 분쟁에 끼어들어 믿 빠진 독에 물붓는 것과 같은 예산 낭비를 하기보다 그 돈을 미국민 자신들의 복지와 삶을 위해 쓰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해외의 분쟁에 끼어들고 또는 분쟁을 일으키는 배후에는 미국을 이끈다고 자임하는 1%의 엘리트 들이 미국의 군산 복합체인 거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그 이익 위에서 공생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민들의 이 같은 생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1차 세계대전 때 불간섭주의인 윌슨 독트린을 낳았지만 이 역시 거대 기업들의 이익 앞에 무너져 미국은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이 내용은 최근 페이스북에 회자 되고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기사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잘 나가던 미국 장군의 고백 “전쟁은 사기다” 라는 책에 관한 기사다. 미국 해병사상 많은 전쟁에 참전해 가장 용감한 군인으로 평가 받았으며 또한 병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스메들리 버틀러(1881-1940) 장군이 쓴 1935년 출간된 책이다. 버틀러 장군은 이 책에서 1차 세계대전 때 윌슨 독트린을 무너뜨리고 미국이 참전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물자를 공급했던 JP 모건은 유럽이 패전할 경우 전쟁 물자의 대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을 우려해 방산업체들과 함께 로비를 벌여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 냈으며 이로인해 윌슨독트린이 허물어 졌고 그 이후 많은 전쟁에서 미국민들이 피를 흘렸으나 국민들에게 돌아 온 것은 세금으로 현실화 하는 빚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책이 말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전쟁을 한마디로 ‘사기’라고 표현한다.

버틀러는 이 책에서 미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필요하지만 미국 자본 및 대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침략전쟁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책에서 “나는 현역 군인으로 33년 4개월을 복무했으며 그 대부분을 대기업과 월가,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 조폭(a high class muscle man)으로 일했다. 1914년 나는 멕시코, 특히 탐피코를 미국 석유업계가 마음대로 요리할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티와 쿠바를 내셔널씨티뱅크가 돈을 긁어모으기에 적당한 장소로 만드는 것을 도왔다. 월가의 이익을 위해 중미 5개국가를 침탈하는 것을 도왔고........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알 카포네에게 조언을 해 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껏해야 시카고의 3개 구역에서 사기 행각을 벌였지만 나는 3개 대륙에 걸쳐 그 짓을 했으니 말이다. 라고 쓰고 있다. 그는 전쟁비용을 위해 세금을 내고 전쟁에 나가 죽는 것은 국민인데 그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것은 거대 군산복합기업이나 경제 엘리트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전쟁의 결과 국가는 막대한 빚을 지는데 전쟁으로 상위 1%의 대기업과 경제엘리트들만 이익을 보는 구조 그것이 전쟁의 민낯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인이 역시 SNS에 올린 또 다른 글이 관심을 끈다. 이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미국은 현재 샌더스나 트럼프를 통해 투사되고 분출되고 있는 미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갈등을 치유할 사회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같은 시스템의 부재는 필연코 미국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 시기가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갈등 해소 시스템의 부재로 미국이 어느날 붕괴할 수 있으며 우리는 미국의 붕괴에 대해 반드시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는 미국민들속에 역사적으로 뿌리깊게 존재해온 이 같은 불만을 읽고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괴물이 아니라 상당수 미국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나 그를 지지하는 미국민들의 생각이 옳다 그르다를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밑바닥에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거대한 집단 자각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 집단 자각을 괴물로 형상화 해 해프닝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그 집단 자각이 상위 1%를 향한 불만으로 분출 될 경우 그 에너지는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발현하면서 PASSION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 또는 그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많은 미국민들의 이 같은 요구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을까 이다. 이 광풍과 같은 밑바닥 에너지를 의식한 미국의 대통령은 과연 어떤 외교 경제 정책을 쓸 것인가. 이게 과연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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