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현 청춘칼럼] 대중문화 강의 중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다. ‘부모님과 너무 안 맞는 것 같고 도저히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면, 집 근처 월세를 한번 알아보면 마음이 좀 정리가 된다.’ 들었을 당시에도 꽤나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 어느 정도 성숙에 이르기까지는 부단히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에의 스펙은 더 이상 취업이나 성공이 아니라 태어났을 때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는 말도 있으니, 점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 말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가족이 개인의 삶에 미치지는 영향이 커진 만큼 개인은 가족에서 빠져나오기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개의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인간은 누구보다도 부모일 것이다. 미성숙한 인간은 심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부모에게 기대게 될 수밖에 없다. 19세기 산업혁명 후 물질자본주의 사회의 기틀이 다져진 후, 가정은 사회로부터 독립된 공간임을 인정받았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집에서 애나 보는 사람’으로 규정 되었고, 여성의 역할은 아이를 양육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국한되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권리의 대부분은 남성에게 귀속되었고, 자본의 힘에 따라 가정의 최고 권위자는 아버지가 되었다. 

근대나 현대의 모든 가정들이 모두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지나친 일반화다. 비록 근대에는 이러한 가정이 일반적인 상식이었을지는 몰라도 인권과 평등,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인류는 여전히 조금씩이지만 나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진정한 개인’이 되기 위해 부모에게서 올바른 방식으로 독립해야 함은 변하지 않는다. 심적으로 여전히 가정에 기대 있는 한, 완전한 개인은 영원히 될 수 없다. 가족중심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자식과 자매, 그리고 형제라는 이름 안에서 ‘개인’이라는 정체성은 눈엣가시다. ‘가족’을 강요할수록 서로의 색깔보다는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이 더 중요시된다. 그러나 더 이상 가정과 부모에게 귀속과 부채를 느끼지 않을 때, 즉 정신적으로 완연한 독립을 이루었을 때 인간은 진정한 ‘개인’으로 거듭난다.

▲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스틸사진

지난달 27일에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는 ‘완벽한 개인’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을 선전하는 캐릭터로서의 히틀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 당시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 강령은 ‘애국심’이었다. 그의 행동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고 국가는 그에게 있어 완전한 정의였다. 초기에 ‘캡틴 아메리카’는 ‘애국심’이라는 컨셉에 맞게 전쟁당시 큰 인기를 구사했지만, 전쟁이 시들해짐과 동시에 그 인기도 함께 꺾였다. 그러나 선전용 캐릭터에 불과했던 ‘캡틴 아메리카’는, 어느 순간 ‘어벤저스’의 리더로서 변화하는 시대에 점차 발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후 히어로 단체인 ‘어벤저스’의 리더가 된 ‘캡틴 아메리카’는 초인들을 국가에 등록하라는 ‘초인 등록 법안’에 반대하여 이에 찬성하는 ‘아이언 맨’과 ‘시빌 워’를 일으킨다.

개인과 자유, 인권에 대한 생각이 고취된 현대에 맞게 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영화와 코믹스에서 더 이상 국가를 최고의 정의로 여기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 ‘어벤저스’가 UN 귀속 되는 것을 반대하던 ‘캡틴 아메리카’의 ‘집단에게는 일종의 의제가 있고 그건 바뀌기 마련이지‘라는 대사에는 그의 변화한 신념이 확고히 보인다. 영화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은 '어벤저스‘가 단체에 귀속되는 것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한다. 그 동안 100여년을 얼음 속에서 보냈던 ’캡틴 아메리카‘는 좋아했던 여자와 믿었던 이들은 모두 잃었고, 가장 소중한 친구는 특정 단체의 꾸준한 세뇌로 유명한 살인마로 거듭나 있었다. 그럼에도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의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자신이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자신의 정의로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과거의 사람이지만 과거에 매여 있지 않다.

반면에 ’아이언 맨‘은 어릴 적 존경하면서도 사랑했던 부모님께 반항하던 시절, 준비되지 않은 채로 아버지를 잃은 것에 여직 매여 있다. 영화 내내 ’아이언 맨‘은 어떻게 해서든 ’어벤저스’라는 단체를 유지하고자 부단히 애를 쓴다. 그에게 ‘어벤저스’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 헤어진 가족을 대신 할 ‘새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저스는 나의 가족이었다기보다는 너의 가족 이었다’고 지적하며 ‘나는 개인과 개인의 힘을 믿는다.’는 편지를 보낸다. 가족에게서, 보금자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개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 서로를 위할 수 있다. 개인의 힘을 믿는 다는 것은 결국 개개인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신뢰에는 그의 가능성관 신념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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