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허필은의 ‘고전으로 고전하기’] 흔히 진로에 대한 결정은 평생 고민해도 답이 도출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진로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하는 시기는 대학생 시기다. 그렇다면 청춘은 어떤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가. 여기서 잠깐! 앞의 명제의 ‘직업(職業)’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지금 이 시대에 직업(職業)이라는 말이 올바른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직업(職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보충하자면 직업(職業)은 이제 ‘직(職)’과 ‘업(業)’으로 분리된다.

과거에는 퇴직 시기가 인생의 말년과 비슷했기 때문에 한 직장에 평생 머물며 모은 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퇴직 시기도 빨라졌을 뿐더러 수명 또한 늘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직장이 평생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어느 기업에 소속돼 일을 하는 것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분리된 것이다. 여기서 전자가 바로 ‘직(職)’이고 후자가 ‘업(業)’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아직 죽지 않았던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두 개념은 붙어서 직업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두 가지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시대가 지날수록 직업의 개념은 점차 변하고 있다.
직(職)과 업(業)의 개념을 좀 더 명료화하기 위해 독일의 위대한 여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을 살펴보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라는 세 가지로 분류했다. 조금 추상적으로 말하면 노동은 삶의 필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 작업은 인공세계를 건설해 인간의 세계를 구축하는 활동, 행위는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역사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여기에서 가장 대조되는 개념은 노동과 행위인데, 쉽게 풀이해서 노동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고 행위는 자신이 가진 본연의 능력과 개성을 공동체 속에서 충분히 발휘하는 활동이다.

노동이 바로 직(職)에 해당하고 행위가 바로 업(業)에 해당한다. 직장의 의미와 가까운 직(職)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몰두하는 일인 반면에, 업(業)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날 정도로 재능을 보이는 일을 의미한다. 한나 아렌트는 두 가지 일 중에서 행위에 해당하는 업(業)에 몰두해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는 산업혁명 이후로 근현대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활동을 주로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생계유지 걱정은 동물들도 하는 걱정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 즉 직(職)에만 몰두하는 것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키지 못한다는 견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세계에 머물고자 한다면 행위, 즉 업(業)에 몰두해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현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점에서 인간을 ‘노동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한 칼 마르크스(Karl Marx)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업(業)을 행하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한나 아렌트는 업(業), 즉 행위에 몰두하면 “금전적 보상은 단지 부차적으로 뒤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때 비로소 행위가 가능하고, 행위가 가능해지면 돈은 자동적으로 벌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허황된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와 가장 밀접하다고 여겨지는 학문인 경영학에서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마케팅의 아버지인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기업이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면 “이익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Profit will follow)”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기업이 기업만의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익을 창출한 것처럼, 개인도 개인의 업(業)을 통해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인간은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진로 선택에 있어서 이제 대학생들은 취직(就職)이 아닌 취업(就業)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 즉 직(職)으로 볼 것인가, 혹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행위, 즉 업(業)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진로에 대한 만족감이 결정된다. 단순히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진로는 한나 아렌트가 비판한 것처럼 동물과 같은 삶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진로와 연관시키는 청춘은 앞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며 살아갈 수 있다. 더불어 기업에서의 일을 행위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에는 퇴직 이후에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언제든지 찾아온다. 노동이 행위로 변신하는 순간 “이익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Profit will follow)”이다. 청춘들이여, 이제는 취직(就職)하지 말고 취업(就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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