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조태홍 청춘칼럼] 고교시절에 살았던 D외고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가 좋고 도랑에는 졸졸졸 개울물이 흐르며 뒷산에는 하얀 정신병원, 북쪽에는 북조선을 두고 있는 곳으로, 그 지리적인 형세가 공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학교였다. 지금이야 11기인지 12기인지 모르겠지만 3기인 내가 입학했던 당시는 학교의 초창기였기 때문에 매우 활력이 넘쳤고 'second to none'이라는 사뭇 패기 넘치는 학교의 표어에서도 볼 수 있듯 동두천 소요산의 정기를 받아 약진하는 북녘의 고교라는 인상이 강했다. 거기에 완공한 지 삼 년도 안 된 디귿-자 모양의 교정과 전교생 기숙사 시스템은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학교를 떠올리게 하였다. 여담이지만 오리엔테이션 당시 인자한 미소와 여타 교장선생님들의 습성과는 다른 짧은 연설 덕에 인상 깊었던 교장선생님은 함자가 '희'자 '용'자 되시는 분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그를 ‘희-Dragon’ 이라고 불렀다. 나는 가끔씩 일 층에서 마주치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근엄하고 또한 인자한 데가 있으며 잔잔한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는 것을 보고 아! 희-드래곤은 몹시 자애로운 분이로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언젠가 정문 앞에서 "이게 학-생의 머리야?!" 하며 이름 모를 선배에게 화통한 귀싸대기를 날리는 그의 박력 있는 모습을 보고 ‘아! 과연 그 이름에 걸맞게 카리스마도 겸비하셨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감탄하였다. 물론 그의 시선을 피해 황급히 머리를 감추고 줄행랑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고삼 당시 우리는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입시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자습을 째고 동두천 시내를 배회했고, 굶주린 이는 고기반찬을 위해 학교 담을 넘었으며, 개중에 스트레스가 조금 심했던 자들은 옆 학교 양아치를 도랑물에 빠뜨리거나 왜인지 무덤 근처를 서성이는, 저마다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다루었다. 내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첫째는 자습이 끝난 후 기숙사 303호실에서 9인조 걸 그룹 포스터에 참배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매일 점심시간 학교 지하 노래방에서 열렸던 노래잔치인 '동균 쇼'에 참석하는 것, 마지막은 자습실에서 총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 날은 나의 열아홉 번째 생일이자, 수능이 50일 앞으로 바짝 다가온 어느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나는 생일날이라는 것조차 잊은 채 ‘호욱’이라는 친구와 학교 주변을 좀비처럼 산책했다. 우리는 수능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지 늦게 왔으면 좋겠는지에 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둘 다 꽤 정연한 근거가 있었고 또 수면부족으로 몽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쉬이 결론이 나질 않았다. 우리는 곧 학교 앞 매점 누나는 몇 살인가 하는 주제로 자연스레 옮아갔다. 나는 열을 올리며 이십대 중후반이 확실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던 중 머리위로 슬며시 드리워진 그림자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YO. 친구! 생일! 축하해!”

“......”

시커먼 그림자가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불쑥 들이민 것은, 검은색 권총이었다. 내게 권총을 수줍게 건넨 이는 4반의 박 씨 성을 가진 사나이로 대단한 광인이었다. 그가 만우절 날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빗자루 총을 든 채 학교를 누볐을 때 이미 알아챘던 것도 같다. 그는 두꺼운 근육질 몸집에 살짝 깨진 이빨 하나와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가 흡사 미국의 갱(gang)과 같은 인상을 지닌 자로 슬랭에 매우 능했다. 실제로 외국에서 살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무엇을 했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이게 뭐니?”

“좋은 거야!” 그는 깨진 이빨과 함께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가 비비탄 총을 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생일이 비슷했던 우리의 친구 호욱 역시 같은 모델의 검은색 권총을 이미 받은 상태였다. 호욱은 치아구조가 매우 불규칙해 퍼즐(puzzle), 우기부기 등의 별명을 가졌으며, 여성기피증 비슷한 것이 있어 여자와 말 섞기를 두려워하였지만 사내들만 있는 기숙사 방에서만은 대단히 핫한 입담을 뽐내었다. 그래서 남학우들은 그가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그는 토크쇼의 황제로 혁명적인 입담과 시대를 앞서나가는 개그를 구사하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쓰러져 위경련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 여배우 김옥빈과 두뇌, 그리고 외과의사에 관한 농담을 들은 나는 일그러진 몰골로 횡격막 근처를 부여잡고 사람이 웃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만 그 개그가 기억이 나지 않아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 모인 세 사나이는 저녁 시간 총을 지닌 채 교정을 거닐다가 갑자기 총을 빼내 조준을 하다 앞구르기를 하고 주위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며 몸을 숨기는 둥 서양 첩보물에 나오는 퍼포먼스들을 격렬히 선보였다. 결국 서로의 멋진 모습과 플라스틱 권총의 숨 막히는 그립(grip)감, 그리고 저물어가는 동두천의 저녁노을에 감동한 호욱과 나는 발작적으로 평소 동경하던 서부 총잡이 듀오를 결성하는 데 이르렀다.

“헉...헉...우리 개 멋있다. 으흫흐.”

“콜록...이제부터 우린 블러디-튜스데이(Bloody Tuesday)다!”

“쩐다......”

그날이 화요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우린 서로 총을 높이 들어 교차시킨 후 호탕하게 한바탕 웃음으로써 피의 맹세를 대신했다. 블러디-튜스데이는 총을 지닌 무법자의 폭력성과 고삼의 내면에 도사린 어둡고 잔인한 본능에 의해 만들어진 2인조 무차별 테러 단체였다. 우리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에 가서 뭘 하고 다녔는지 아셨을까. 우린 이름에 걸맞게 화요일에만 활동하기로 하고 종이 울리자 땀을 뻘뻘 흘리며 황급히 자습실로 뛰어 들어갔다.

시간은 흘러 다음 주 화요일, <블러디-튜스데이>가 활동하는 야심한 저녁이 되었다. 두 총잡이는 주황빛 체육복 바지 뒤춤에 검은 비비탄 총을 꽂아 넣고는 인상을 가득 찌푸린 채 체육관 지하 삼 학년 자습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이미 그곳은 비비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요, 잔혹한 제노사이드와 동족상잔의 현장이었다.

알고 보니 박 형은 누군가의 생일만 되면 어디서 공수해왔는지 모를 다양한 총기들을 뿌려온 것이었다. 과연 그는 희대의 미친...아니 광인이었다.

그리하여 자습실은 시꺼먼 총을 들고 첩보 액션 놀이를 하다가 쭈그려 앉아 비비탄 총알을 줍다가 하는 남자애들로 넘쳐났다. 물론 과장된 기억이겠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거의 모든 남자애들이 총을 지니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모두는 날카롭게 좌우를 쏘아보며 총을 꺼내들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향해 총을 쏘아대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사회 시간에 배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이런 거로구나- 하였다. 학부모들이 봤더라면 수능이 오십 일도 남지 않은 당신의 아들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으리라.

무차별적으로 전개되던 총격전은 어느 시점부터 점점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고, 자습실 오른쪽 구역에서 총을 쏘다가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겨 엄폐하는 식의 치열한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당시 방영되고 있던 인기 드라마의 이름을 따 <아이리스(IRIS)>라고 불렀다. 그 기나긴 내전, 그리고 무수한 활극들 속에서 수많은 영웅과 악당들이 탄생하고 또 스러져갔다. 얇은 체구에 몸이 마르고 긴 팔다리를 지닌 ‘스키니-킴’은 그 신체 구조나 얼굴의 특성상 인질극을 하는 비열한 테러범 역에 적격이었다. 그는 영어에 능해 인질들의 멱살을 잡고는 “BRING ME TRUCKS OF MONEY!!” 하며 이슬람 계 테러리스트마냥 총을 들어 허공에 난사하였는데 과도한 영어공부로 인한 다크서클과 대비되는 희번득한 흰자가 보는 이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또한 환절기 때 쟁여두었던 마스크를 쓴 과격파 강도들은 상대의 입에 무자비하게 총구를 쑤셔 넣고 눈을 뒤집어 깐 채 위협하는 모습이 흡사 모 영화의 입 찢어진 광대를 보는 듯 했다. 그러면 입안에 총구가 들어간 인질들은 "머르씨...멀씨(mercy)..." 하며 자비를 구걸하다 그들의 광기에 겁을 먹고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여러 대결 중에서도 최고의 쇼는 총기브로커 박 형과 애니메이션 부 부장 석우의 맞대결이었다. 석우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체구의 박 형은 쉬는 시간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석우 사냥을 하였고 총격전으로 시작된 승부는 언제나 레슬링 난장판으로 발전해 길로틴 초크로 목이 휘감긴 석우의 비참한 최후로 끝이 났다. 누가 봐도 박 형의 일방적인 난타전이었지만 석우는 마치 이것이 재미있는 장난인 양 가장하여 헤드록이 걸린 시뻘건 얼굴로도 입 꼬리만은 올리고 있었는데, 호욱의 말로는 자신이 석우의 눈가에 맺힌 이슬 같은 무언가를 목격했다 한 걸로 봐서 그의 육체는 그걸 그다지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몇몇 여자애들까지 멀찌감치 서서 구경하던 석우와 브로커 박의 대결은 종군 기자를 자처한 희생정신 높은 자들의 촬영으로 후세 기록에 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리스의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가왔다.

“니들 이것이 뭣이냐?!”

자는 학생이 있나 하고 자습실을 순찰하던 S 사감의 목소리였다. 그는 박 형의 책상 구석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박 형은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먹는 건데요.”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책상 구석에 있던 하얗고 동그란 비비탄을 들더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과연 광인. 나는 손쉽게 S사감을 기만한 그의 노련함에 경탄을 감출 수가 없었다. S사감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사실 박 형은 기숙사에서도 마시멜로우를 몰래 먹다 들키자 스펀지라고 속여 무사히 상황을 모면한 경력이 있었다. 그러나 사감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퍽 날카로운 육감을 지니고 있었다.

“너 이거 뭐여, 이거 비비탄 총 아녀?!”

“홀리-쉿!(holy shit!)...”

S사감은 박 형의 불룩한 호주머니에서 삐져나온 검은 손잡이를 보더니 그를 무섭게 추궁했고 곧이어 총을 강제로 압수했다.

“이놈의 시키들이 얼마 전부터 계속 틱틱거리는 소리가 이거였구먼! 뭐? 먹는 거?! 이 자식들이 장난을 쳐?! 으이잇!”

신성한 자습실을 더럽히는 범죄자들에 대한 경고였을까. 흥분한 그는 우리에게 주의를 주려는 듯 압수한 총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고, 내구성이 약한 모델인지 총은 그만 박살이 나고 말았다.

수많은 시가전과 추격전, 인질극, 격려차 자습실을 방문한 교장선생님 암살 미수 등 다양한 사건들을 남긴 '아이리스'는 S사감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그렇게 끝장이 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는 함부로 총을 가지고 놀 수 없었다. 모두는 <이젠 정말 공부뿐이야!’> 라는 공통된 표어 아래 일치단결하여 한 달 남은 수능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다. 그 날의 사건 이후로 급격히 줄어든 총소리는 며칠 정도 한가한 저녁 시간에나 가끔씩 들리더니 얼마쯤 뒤엔 아예 멎어버렸다. 사실 총소리가 멎은 것이 오로지 사감의 위협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능 날이 가까워지자 예민해진 학우들이 짜증을 내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피식거리며 아이리스를 구경하던 이들도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고 엄마와 이십분씩 통화를 한 후에는 쉬는 시간에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는 철없는 무리들에게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블러디-튜스데이를 비롯한 총잡이 일당들 역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 뒤통수가 선득선득 해지고 손에 마구 땀이 났기 때문에 쉽사리 총을 쥘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이 종종 해주시는 충고대로 우린 모든 것을 수능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나와 호욱, 박 형은 종종 쉬는 시간에 수능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하여 토론했는데 그것도 생각보다 몹시 신나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잠자기, 사감실 앞에서 삼겹살 구워먹기, 자습실 책상을 밟고 일어나 방구!! 라고 외치며 방귀를 뀌기 등 여러 가지 소원들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은 역시 아이리스였다. 우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한 손엔 총을 다른 한 손엔 비비탄 통을 들고 자습실 바닥을 하얗게 굴러다니는 비비탄으로 가득 채우는, 그런 이상향을 꿈꾸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기만 하면은...

시험기간의 속성이 항상 그러하듯, 그 근처에 있던 우리들의 시간은 신나게 흘렀고 아뿔싸! 하는 순간 어느새 수능 날이었다. 전날 밤에는 빨리 자야 했기 때문에 잠들기 위해 땀나도록 노력을 했고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았다. 비몽사몽간에 먹은 떡국은 목이 메었으며, 수능시험장은 으슬으슬했다. 묵시록에 나오는 세상의 마지막 날 같을 것만 같았던 수능날도 컴퓨터용 사인펜을 몇 번 똑딱거리자 어느새 저물었다. 수능이 끝나고 고사장을 나가면서, 나는 내가 거의 만점에 육박하는 점수를 받았으리라는 강하고 헛된 예감을 받았다. 여기서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로 하겠다.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는 수많은 표정들이 엇갈렸다. 울상, 죽을상, 기뻐하는 상, 기쁘지만 대놓고는 못하는 사람의 어중간한 상.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애매해서 총잡이 시절에 했던 것처럼 한껏 인상을 썼다. 선생님이 얼른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수능이 끝난 학교는 매우 심심했지만 더 이상 할 것도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아이리스가 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잘못해서 잘못된 표적을 맞추면 내 인생도 그대로 잘못되어 버릴 것 같았기에 열심히 참았다. 게다가, 우리는 더 이상 자습실에 갈 일이 없었다. 벌써부터 재수학원을 알아보러 다닌다, 알바를 한다, 혹은 학교에 나오기 싫다는 아이들로 수능이 끝난 후의 교실은 휑한 느낌이었다. 호욱과 박 형은 재수를 할 거라고 했다. 나는 지하철로 성균관대역을 찾아보고선 그 엄청난 거리에 절망했다. 그날 나는 늘 마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총을 사물함에 넣었다.

그 이후로 우리가 비비탄 총을 잡아보는 일은 없었다.

수 년 후. 내가 아직 군인일 때 마지막으로 만난 호욱과 박 형은 여전한 모습이었다. 호욱은 마침내 교정을 거의 마쳐 퍼즐이라고 불리는 수모를 겪지 않게 되었고 박 형은 해외를 다녀와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더니만 어느새 충동적으로 군에 입대한다고 했다. 둘은 언제 배웠는지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웠다. 호욱은 박 형과 함께 살 때 고시 텔에서 주는 김치와 소금만으로 밥을 먹었던 때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CPA를 향한 고난의 행군이 하루빨리 끝나 입대 후 진짜 총을 잡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우리는 밤을 새워 이야기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몇 가지 개인적인 치부들을 들춰내는 과정에서 일련의 욕설과 주먹이 오갔지만 모두 그때는 참 재미있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물론 놀 때만 재밌었지 공부할 때는 최악이었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고삼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엔 대답들이 엇갈렸다. 결국 우리는 로또를 하자! 그리고 언제 한번 모교에 놀러 가자! 라는 단순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기쁘게 첫차를 탔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져 부대에 복귀했던 기억도 벌써 먼 과거가 되어 흐릿해진 지금, 나는 이렇게 딸기우유 빨대를 문 채 과거를 회상한다. 당시 수능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고등학생들은 세월의 풍파를 거세게 맞고는 어느새 취업을 위해 낑낑대는 대학생이 되어버렸다. 바로 내일 있을 발표와 퀴즈 걱정에 핫-식스로 이루어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다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은, 그 때 사물함에 넣어둔 내 총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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