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주동일 청춘칼럼] 살면서 친구가 소중하다고 느낀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여자인 친구들을 소중하게 느낀 시간은 그보다 짧다. 친구가 소중하다고 느낄 당시에 남자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친구들이 모두 남자였고, 대학교에 와서야 여자인 친구를 처음 사귀었다. 여자들에게 남자들과 똑같이 우정을 느끼기 시작한 게 스무 살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전까지 여자는 ‘여자’였다. 왠지 보호해야만 할 것 같았고 남자들보다 예민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 조심스러운 행동들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조심스럽지 못하게 조심스러웠다.

어릴 때는 혼자 지내는 게 편했다. 집에 가면 가정은 화목했고 친구 같은 연년생 형이 있었다. 학교 친구들과 취미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잘 맞지도 않았고, 적을 만들어서 동질감을 느끼는 당시 친구들의 놀이는 어딘지 버거웠다. 자연스레 또래 친구들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나이가 남들보다 훨씬 늦었다. 친구가 소중하다고 느낀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친구들이 가족 같았고,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볼 때마다 이유 없이 반가워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안기고 싶다. 그럴 때면 일부러 허세를 부리며 “왓썹 브로!”를 외치고 껴안는다. 친구들은 “병신”이라고 욕하면서도 안아준다. 가족 이외에는 냉담했던 내게 사람을 어떻게 아끼는지 오랜 시간에 걸쳐 보여준 ‘의리 있고’ 멋진 친구들.

나는 대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여자 사람 친구’를 사귀었다. 기 센 선배들을 피해 다니다가 친해진 우리는 1학년 때 서로의 말투부터 표정까지 온갖 이유로 일주일에 한 번씩 싸웠다. 과방에 앉아 있다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다른 친구를 불러놓고 기다리다가 시비가 붙었다. 심지어 어느 한 명이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가 싸운 적도 있다.

우리는 대학교에서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친구가 서로 한 명씩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자주 싸웠다. 사실은 둘이 함께 서 있는 모습부터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야간 자율학습을 한 번도 빠진 적 없던 나와, 수업을 빠지고 베이스 기타를 맨 채 담배를 피우던 그 친구. 카페에 가면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안절부절 못하는 내 앞에서 그녀는 얼마 전에 한 문신에 리터칭을 해야겠다며 타투이스트의 번호를 찾았다. 그 날도 싸움이 났다. 이제 가야겠다는 나와 답답하게 굴지 말라던 그 친구. 물론 이제는 나도 문신이 생겼고 그녀는 수업에 착실히 들어간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카페에 앉아 할 일을 하다가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우리의 싸움에는 친절한 듯 무심한 나와 까칠한 듯 여린 그 친구의 성격차이도 한 몫을 했지만, 성별 차이도 한 몫을 했다. 단순히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동안 맺어온 친구 관계의 문화가 달랐다. 서로가 친구를 맺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친구로서 지켜야 할 행동까지. 애초에 언어 자체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개가 꼬리를 들 때 고양이는 꼬리를 내리듯,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같았지만 그걸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달랐다. 내 장난은 그녀에게 잦은 상처를 입혔고, 그녀가 생각하는 ‘친구로서 지켜야 할 일’이 내게 간섭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사소한 일로 한참을 싸웠고, 결국에는 어느 한 쪽이 ‘납득 안가는 이해’를 들먹이며 억지로 사과를 하며 싸움을 끝냈다. 그렇게라도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 날에는 한 쪽이 울음을 터트리면서 싸움을 끝냈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우리의 차이는 ‘옆 동네’ 혹은 ‘옆 고등학교’에서 온 친구와 지내는 것만큼이나 가벼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는 서로의 차이를 절대로 좁혀갈 수 없을 것처럼 느꼈다. 그만큼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보기도 전에 서로를 멀리 있는 타인으로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겪는 일들은 아주 조그맣게 보였고, 각자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도 전에 상대방은 이미 틀렸고 내 처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여자 사람 친구'가 없었다면 어땠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내 이십대의 아이콘인 그녀와 함께한 많은 기억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 서정적인 것들을 뒤따라, 함께하면서 배울 수 있었던 많은 것들도 잊혀 질 것이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녀와 처음으로 말을 하면서, 나는 내집단이었던 남자 친구들이 아닌 ‘타인’에게도 진심어린 애정을 갖게 됐다. 함께 있는 시간들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누군가를 아끼고 미워하는 방법과 그걸 받아들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 행동이 은연중에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여전히 여자는 임신 때문에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짧은 옷을 입은 여자는 밤에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가진 생각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는 것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서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인간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을까.

최근에는 그 친구와 싸운 적이 별로 없다. 한 학기 동안의 내 인턴 생활이 끝날 즈음 그녀가 유학을 결정했다. 이제는 민망하리만큼 친절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때여서 그런 것 같다. 한편으로는 1학년 때의 우리를 화해시켜준 ‘납득 안 가던 이해’가 서서히 ‘이해’로 바뀌기 시작한 탓도 있으리라고, 그렇게 어리고 편협했던 우리가 아주 조금 덜 별로인 사람들로 성장했으리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요즘 그녀의 유학을 앞두고 레드핫칠리페퍼스의 ‘Under the bridge'라는 노래를 자주 듣는다. 이십대 초반에 고등학교 친구들의 입대일이 다가올 때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으며 펑펑 울었던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인턴을 마무리해도 끝나지 않는 내 취업 준비와 정신없는 그 친구의 출국 준비 탓에, 우리가 앞으로 얼굴을 볼 날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 된다. 지금쯤 친구를 만나 강남역 어딘가에서 이 새벽까지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있을 그녀에게 그동안 함께 해줘서,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힘들다고 손을 놓지 않아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귀국하는 날에는 서로 더 많이 성장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떠나지도 않은 그녀의 귀국 날이 기다려진다. 돌아오면 달려들면서 외칠 거다. “왓썹 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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