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백민경의 스포츠를 부탁해]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여러 종목에서 세계 랭킹 1위, 강력한 금메달 후보, 금메달 어벤저스 팀 등 메달을 딸 것이라며 보도했다. 하지만 이를 보란 듯이 세계 랭킹 1위들이 조기 탈락하며 세계 랭킹 1위의 저주라는 소리까지 나오게 됐다. 좌절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국민들과 언론은 그만큼 금메달에만 집중했고, 선수는 금메달이 아닌 사실에 좌절해야만 했다.

이번 리우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김태훈, 김소희, 이대훈, 오혜리, 차동민 선수 모두 세계 랭킹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지금까지 금메달 10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등 총 14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효자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메달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연일 금메달 사냥이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 MBC 올림픽 중계 화면 캡처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 역시 태권도 남자 68kg급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특히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혹독한 체중감량을 극복하고 58kg 급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선수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메달의 유력한 후보라고 점쳐졌었다. 이대훈 선수는 이미 아시아 선수권, 아시안게임, 세계 선수권을 우승한 바 있다. 그랜드슬램까지 딱 하나 올림픽 금메달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가장 높았다.

이대훈이 출전한 68kg급은 세계 랭킹 1위인 러시아의 알렉세이 데니센코, 올림픽랭킹 1위인 벨기에의 자우드 아찹,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이대훈을 이기고 우승했던 스페인의 호엘 보니야까지 경쟁자가 즐비했다. 하지만 이대훈 선수는 그들과 겪어보기도 전에 8강전에서 본인이 경계대상으로 뽑았던 요르단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랭킹 40위)에게 8-11로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런데 이대훈은 경기가 끝나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자신을 이긴 아부가우시를 바라보며 미소를 보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부가우시 선수에게 다가가 직접 손을 들어주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의 승리를 존중하는 동작을 보여줬다. 졌지만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이대훈의 모습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무조건 좌절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스스로가 창피해진 순간이었다.

▲ MBC 올림픽 중계 화면 캡처

이대훈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모든 면에서 다 즐기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회 전부터 견제를 많이 했다. 내가 즐기는 것보다 더 마음 편안히 하는 선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내가 배웠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대훈 선수는 "어릴 때는 경기에 지면 내가 슬퍼하기에 바빴다. 지난 올림픽 때도 지고 나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 했다."라며 이번 경기에서는 속으로는 아쉬웠지만 상대를 존중해주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대훈 선수는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평생 갖고 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 하나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졌다고 기죽어 있고 싶지는 않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대훈 선수의 이런 정신을 올림픽의 신이 알아준 것일까, 아부가우시가 결승에 진출하며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대훈은 패자부활전에서 아흐메드 고프란(이집트)을 꺾은데 이어 동메달 결정전에서 올림픽 랭킹 1위인 자우드 아찹(벨기에)을 꺾으면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가 끝나기 22초 전 무릎을 절뚝이면서도 점수를 따내는 근성은 많은 이들의 감동을 샀다.

▲ MBC 올림픽 중계 화면 캡처

“메달보다 국민들에게 태권도가 얼마나 재미있는 스포츠인가를 보여주겠다.”

이대훈 선수는 대회를 나서기 전, 남다른 각오를 밝혔었다. 태권도는 그동안 경기가 재미가 없고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비난으로 퇴출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이대훈 선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이기고 지고를 떠나 적극적으로 공격했고, 멋진 발차기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이대훈 선수의 경기를 보고 진짜 태권도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며 그의 메달 색깔에 관계없이 박수를 보냈다.

금메달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를 꼽는다면 이대훈 선수를 뽑을 것 같다. 최선을 다했고, 승패를 받아들이며 상대의 승리를 존중해주었던 그 모습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금메달 기록만을 기억할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 이대훈 선수의 동메달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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