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진형의 철학과 인생] 작년 이맘때쯤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중학교 동창과 함께. 일요일 오후에는 에펠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친구는 그날 오전에 예배드리고 온다며 서둘러 나갔다. 금방 돌아 올 테니 숙소에서 잠자코 기다리라고. 5시쯤 됐을까. 문자가 왔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것이다. 파리가 두 번째 방문인 그 친구에게는 쉬운 일이리라. 나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길을 헤매기 일쑨데, 타지는 오죽할까. 결국 다툼이 일어났다. 서로 실랑이를 벌인 끝에 내가 직격탄을 날렸다. 각자도생하자고.

나는 부랴부랴 짐을 싸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말이 통하는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향해. 그곳에서 첫 날밤. 언짢은 기분을 버리지 못하고 선잠을 잤다. 다음날 안주인에게 대충 여행 정보를 듣고 홀로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얼마가지 않아 난관에 봉착. 지하철 표를 어떻게 끊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봤다. 나를 이끌고 몇 계단을 올라 꾀나 걸어갔다. 표 기계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헤맸다는 사실에 민망했다. 표 살 동전도 없어서 난감했던 건 그 다음이었다. 고맙게도 그 행인이 대신 결제를 해줘 전철을 탈 수 있었다.

한숨 돌리고 로댕 미술관으로 향했다. 골목길이 다 똑같이 생겨서 미로 속의 쥐가 된 기분이었다. 마침 옆에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도 여행객인 듯 미술관 위치를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근처 카페로 들어가 설명을 듣고 나에게 길 안내를 해줬다. 이걸로 부족했는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며 내 손에 쥐어줬다. 펜으로 화살표를 정성스럽게 그린 지도. 그 외에도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다.

현재 내 친구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한 달 전에는 밤중에 칼을 든 괴한으로부터 핸드폰을 도둑맞았다고. 걱정스런 마음에 “고마움도 모르는 사람에게 봉사 그만하고 한국이나 와”라고 다그쳤다. 친구의 반응에 기가 막혔다. “이번 일로 더 열심히 봉사하게 됐다” 그 친구는 더 떠들었다. 처음 여행할 때 너처럼 현지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거의 무일푼으로 유렵에서 한 달간 유랑했다는 경험담도 풀었다. 이 경험이 봉사의 계기가 됐다나.

어쩌면 인간의 이타심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받은 친절과 호의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대가성 없는 선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재능기부. 순수한 마음에서 건네는 다정한 말 한 마디. 어느 책에서 본 대목이다.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에게서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어. 그래서 내가 너에게 그 친절을 돌려주는 거야” 작은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는 미풍양속과 온전한 전통이 어떤 법으로 인해 훼손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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