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황인선 교수의 미학적 사진] 향교를 아시나요? 향교는 고려시대에 처음 설립돼 조선시대로 계승된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지금의 국립학교에 해당됩니다. 지방에 유교이념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기도 합니다. 조선을 창업했던 이성계는 정도전의 의견을 받아들여 통치 이념으로 유교를 도입합니다. 

갑작스레 고리타분한 향교 이야기 냐구요? 요즘처럼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저출산, 사교육, 저성장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지도층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때에 향교를 통해 옛 사람들의 삶의 정신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없어진 시대에 조선의 향교를 통해 오늘을 생각해 보자는 의미도 있구요.  

지하철 9호선 역명으로 사용되는 양천향교. 오늘은 이 곳 양천향교를 돌아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같이 해보도록 하시죠.

인의예지의 근간 유교와 양천향교를 찾아서

이 문을 홍살문이라고 합니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여 임금이 그 집이나 마을 앞, 능, 원, 묘 등에 세우도록 한 붉은 문입니다. 수절하며 살아가는 과부 2대의 이야기를 담은 변장호 감독의 홍살문이라는 영화도 있지요.

양천향교 입구에는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붉은 홍살문이 서 있습니다.

향교를 들어서기 전에 왼쪽 편에 커다란 정자가 서 있었는데, 이 곳은 양천향교와는 별도로 2007년에 신축된 문화공간으로 유예당이라는 놀이마당입니다. 정자와 마당 그리고 원형의 객석이 마련되어 문화행사와 각종 민속공연을 하는 곳입니다.

향교의 역할
본격적으로 양천향교로 들어가기 앞서 향교와 유학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향교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국립 교육기관입니다. 보통 서당공부를 마친 16세 이상의 학생이 입학합니다. 평민도 소학시험을 치르면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 평민의 비율이 더 높아지자 부유한 양반 자제들은 이름있는 선비들이 운영하는 서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향교는 공교육의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네 학교 모습과 매우 흡사하지요.

선비들은 향교에서 수학한 후 과거를 보는데 1차 합격자는 생원, 진사의 칭호를 받고 성균관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균관 유생으로 교육을 수료한 후에 문과시에 응하여 고위관직에 오르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향교는 과거시험장이 되고 서원이 발흥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 또한 현재의 교육현실과 비슷합니다. 1894년(고종31년) 말에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향교는 이름만 남아 문묘(공자를 모시는 사당)의 역할만을 하게 됩니다. 

향교의 변천사를 보면 요즘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요? 오늘날 사법제도를 과거시험이라고 설정하면 향교의 기능이 로스쿨이라는 서원으로 옮겨가고 과거시험은 철폐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너무 비약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향교의 몰락은 서원이 성장함에 따른 결과로 도산서원, 병산서원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향교의 교육이 너무 입시위주(?)로 변질되고 명예나 이익만을 다투게 되어 뜻있는 선비들이 그 대안을 찾아 만든 것이 서원입니다.  후학들이 스승을 기리는 서원을 세우기도 했지요.

양천향교 안내서를 보고 저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인데요. 이 곳이 서울에서 유일한 향교라고 합니다. 양천향교는 조선조 태종 12년(1411)때 창건됐습니다. 원 소재지는 경기도 김포군(양천군)이었는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행정구역상 강서구로 편입되면서 서울의 유일한 향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통계자료를 보니 전국에 아직도 234개의 향교가 존재합니다. 고풍스런 마을에 민가처럼 보이지 않는 옛 한옥이 있으면 향교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향교의 공간구성과 기능
크게 나누어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으로 나뉘어지는데 외삼문과 내삼문이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 향교는 유교 국가를 표방한 조선왕조가 통치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므로 단순히 교육기관의 역할뿐만 아니라 유교를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성현들에 대한 사당으로서의 기능도 함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는 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구분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교육공간으로서의 명륜당과 기숙사인 재(서재, 동재)와 배향공간으로서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으로 건물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양천향교의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하여 명륜당(明倫堂), 전사청(典祀廳), 동재(東齋), 서재(西齋), 출입문에 해당하는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과 부속건물 등 8동이 있었습니다.

향교의 공간배치는 평지에서는 대성전을 앞에, 유학을 가르치던 강당인 명륜당을 뒤에 배치시켜 놓습니다. 반대로 구릉지에서는 대성전을 높은 곳에, 명륜당을 낮은 곳에 배치시켰습니다. 양천향교의 경우 후자에 해당되는 공간배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이 중앙에 보이고 계단아래 동재와 서재를 배치했습니다. 

명륜당의 명륜은 인륜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주자(朱子)는 하늘이  사람과 물건에게 부여하는 것을 명(命)이라 하고 사람과 물건이 받는 것을 성(性)이라 일렀습니다. 한 몸의 주인이 된 것을 마음(心)이라 이르고 하늘에서 얻어서 빛나고 밝고 바른 것을 명덕(明德)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명덕을 밝혀서 인륜(人倫)의 도를 걷기를 위한다는 뜻으로 명륜당(明倫堂)이라는 당호(堂號)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명륜당 처마를 통해 청명한 가을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학당에서 삼강오륜의 뜻이 담긴 글 읽는 학동들의 소리가 세월을 거슬러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제향공간이 있는 대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한 내삼문입니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대문에 다다를 수 있는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면서 옛 시절 선비들의 발걸음을 따라 가봅니다.

내삼문 대문사이로  양천향교에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대성전 앞을 거니는 가족들을 보니 공자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공자는 가족생활에 있어서의 오상(五常)중 인(仁)을 이상의 도덕이라 하여 인간사회에 있어서 가족생활의 윤리가 국가천하를 평정하는 원리가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공자의 인의사상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불변의 원칙이 아닐까요?

한국의 유교는 오랜 시간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문화와 사상을 지배해 왔습니다. 이 시절의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지요. 하지만 오늘날 매스컴에 보도되는 뉴스들을 보며 이와 같은 사상들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유교의 틀을 잡은 맹자는 사람에게는 날 때부터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옳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시비지심)이 있다고 합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을 잘 닦으면 인, 의, 예, 지의 네 가지 덕목을 갖춘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운 인간이 되어 세상을 평안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이 유교의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맹자가 설파한 이 네 가지 마음을 우리가 지켜간다면  각박한 세상도 기본이 통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양천향교를 느긋하게 거닐면서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지켜야 할 세 가지의 덕목과 다섯 가지의 도리를 '삼강오륜'이라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비로소 임금, 신하, 아버지, 아들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무조건의 복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임금도 임금답지 못하면 존경하고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되니 사실 참 무서운 뜻을 내포한 철학이 아닐까요.

우리는 짧은 시간에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되는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도성장에 몰두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향교가 마치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버린 오늘을 살아가면서 오래된 정신을 다시금 꺼내 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청명한 가을날 주변에 향교가 있다면 가족들과 한번쯤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화려한 볼거리에 몰두만 하지 말고 지역에 유서 깊은 향교나 서원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가치관을 다시금 정리해 보는 시간은 어떨까 싶습니다.

서두에서 꺼낸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 청년실업, 비정규직, 저출산, 사교육 등 근본적인 문제는 어쩌면 우리 삶의 기본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발생된 일은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해온 유교의 삼강오륜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을날 양천향교 나들이를 통해 저도 현대를 살아가면서 잠시 잊고 지내왔던 사람의 근본과 가족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양천향교에서 인의예지를 생각해 보다. 

▲ 황인선 교수

[황인선 교수]
사진작가, 문화예술콘텐츠 전문가
동국대학교 영화영상석사
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학 박사수료
경기대학교 관광교육원, 호서예전 출강
전) 게임물등급위원회 사무국장
현) 미학적사진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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