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결혼에서 외면적 조건보다 개인적인 특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또 다른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좋아서 결혼한 사람이니까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결심으로) 그 사람의 단점은 고쳐주고 장점을 살리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상대의 단점에 대해서 ‘구제불능’이라며 단념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훌륭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규형씨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는 가난한 고학생이던 자신이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고위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부인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자신의 학비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공부에 전념하도록 해주었던 것입니다. 규형씨의 ‘성공’을 위한 부인의 노력은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 밖에서는 물론 집 안에서도 소위 ‘메이커’ 옷만을 입게 했고, 틈틈이 예술의 전당에서 ‘교양’을 쌓게 했습니다.

하지만 규형씨는 자신이 바라던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옛날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면 부인이 “그런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하고, 소위 '향토 음식'을 먹으려 하면 “이제는 식성도 바꿔야 한다” 면서 이름도 모르고 비싸 보이는 음식들을 강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규형씨는 부인의 마음을 잘 알기에 참고 있지만, 갈수록 부인이 자신의 태생 자체를 무시한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치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를 받는 초등학생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인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규형씨의 심정을 제가 나름대로 풀어서 말하자면, ​그는 부인에게 “나보다 더 나은 남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나를 선택하고 또 나를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나를 선택했다면 나를 당신의 취향대로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내가 가진 못난 점들도 그대로 받아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선 이 부인이 상당히 칭찬받을 만하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외부 조건으로는 ‘보잘것없는’ 규형씨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남편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인에게 커다란 잘못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눈’은 감고 ‘남편에 대한 눈’만을 계속 뜨고 있었던 데에 있습니다.

만약 이 부인이 상담실에 왔다면 저에게 이렇게 따져 물을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 조건 보지 않고 오로지 사랑만을 믿고 결혼했다. 내가 이처럼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 사람 문제는 그 사람 문제고 내 문제는 내 문제일 뿐이라면, 그래서 서로에게 해줄 것도 없고 바라지도 말라면, 그것이 무슨 사랑이란 말인가?”라고 말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부인이 미처 모르는 ‘사랑의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단점을 고쳐주려는 ‘욕심’입니다. 이 점을 망각하면 ‘소 뿔을 곧게 만들려다가 소를 죽이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사실 상대의 단점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는 것은 그 단점을 고쳐주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불편을 나누어 지려는 것이야말로 그보다 훨씬 성숙한 사랑인 것입니다.​

어쩌면 이 부인의 심리 내면적으로는 규형씨의 단점을 견디기 어려워했을 수도 있고, 또 규형씨의 성공을 통해서 자신의 욕구를 대리 충족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고칠 점에만 집중하게 되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 부인이 남편을 보던 ‘눈’을 자신의 내면으로 되돌리고 ‘남편의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규형씨에게 ‘벗어나고 싶어진 부인’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훌륭한 상대를 고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생활 내내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계속해야 합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결혼이란 각자 자신이 가진 약점과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도움이 될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결혼할 상대에 대해서는 잘 알아보아야겠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대를 선택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자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부러워할 거라는 ‘욕심’이나 남들과 달리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만’에 눈이 멀어서 ‘내 발등에 내가 도끼를 찍는’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단점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가진 장점은 단점이 되지 않게 잘 지켜가면서 서로의 단점에 숨겨진 장점을 찾아내어 키워가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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