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진형의 철학과 인생]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식의 글을 쓰는 나를 발견했다. 주어와 서술어를 동일하게 써버렸다. 시중에 출판된 글쓰기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아직까지 실수가 잦다.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 때가 있지만, 내가 원숭이였던 적이 있었나? 칼럼은 몇 번 써봤지만, 수필은 생소하다. 그래서 최근 공모전에서 떨어졌나. 물에 젖은 종이처럼 기분이 후줄근했다. 요새 고민이 많다. 글도 안 써진다. 주제를 또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

다시 공부해야겠다. 《기자의 글쓰기》 책을 펼쳤다. 예전에 공부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기자 출신이 쓴 글이라 술술 읽혔다. “글은 단정적으로 쓴다”라는 부분을 만나기 전까진. 철학과 출신 학생으로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강조했던 건 무지의 지혜였다. 우주적 관점에서 미물에 불과한 사람이 내린 판단과 분석이라는 게 얼마나 정확할 수 있을까. 세상이 ‘1+1=2’처럼 간단명료하게 정리될 수 있을까. 단정적으로 쓰는 건 불가능한 것일지도. 논술 선생님도 내 글을 훑어보더니, 가장 큰 문제점이 단정적 표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민했던 게 조금 해결됐다. 글 쓸 소재를 찾은 것. ‘단정적 표현’을 쓰라는 필자의 주장을 비판하자. 우선 해당 페이지를 차근차근 읽었다. 으레 글쓰기 전에는 머릿속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등 한 편의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올바른 방향으로 글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필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문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실 관계가 확실한 상태일 경우, 글도 확신을 가지고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라고 생각한다” 등 문장이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다, 아니다” 식으로 단정적으로 쓰라는 의미였다. 어어, 독해를 잘못했다. 미리 답을 정해놓고 읽은 탓에 내게 불리한 내용을 건너뛴 것이다. ‘단정적 표현’뿐만 아니라 ‘단정적 사고’도 무섭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찌됐든 글쓰기보다 중요한 ‘글읽기’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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