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와는 별개로,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집 부근에 이사를 온 부자 청년에게 자신의 딸들 중 하나를 결혼시키려고 마음 먹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부자니까 그저 좋은 혼처라고 여겨서 욕심을 내는 것이지요.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9세기에도 결혼의 조건으로 경제적 능력을 제일 먼저 따졌던 것을 보면 결혼과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봅니다.

엘리자베스는 결혼이란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잘 살펴서 신중하게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결혼과 돈’이라는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였나 봅니다. 그래서 자신의 외숙모에게 “결혼에 있어서 돈만 밝히는 것과 신중한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어디까지가 신중한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탐욕인가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제가 21세기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네가 따지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렴. 만약 네가 쓸 수 있는 돈을 따지는 것이라면 탐욕일 것이고, 그 사람이 완벽한지를 따지는 거라면 지나치게 신중한 것일 게다. 그러나 네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지금 그가 가진 돈의 많고 적음 보다 그 돈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단다” 라고 말입니다.

제인 오스틴이 살던 과거에 비하면 현대는 결혼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높게 여기지만, 요즘 들어 또다시 ‘그 사람이 가진 돈'을 따지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것으로 보여서, 심히 안타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서 결혼을 해도 살기가 어려워지면 사랑이고 뭐고 다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난으로 불편을 겪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반면에 편하고 부유한 삶은 만족과 감사를 가져다 주며 그로 인해 사랑의 감정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결정할 때에는 경제적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 경제적 조건들 중에서 정확히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이 좋은 결혼 상대자일까요? 흔히들 생각하는 대로,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변호사, 의사, 혹은 공무원일까요? 언젠가 한몫 건질 수 있는 금융전문가나 기업인일까요?

​제 생각에 ​중요한 것은 상대가 지금 가지고 있거나 앞으로 벌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닙니다. 지금 돈이 많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있는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날리고 가난해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따라서 결혼을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계속 부유할 수 있거나 지금은 가난하더라도 앞으로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대를 찾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상대일까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대의 직업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경제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결혼할 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부의 경제관이 다르면 결혼 생활 내내 돈에 관련된 싸움을 하느라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결혼한 두 사람의 경제관이 비슷하면 돈으로 인해 싸울 일이 적고, 또 열심히 돈을 모아 앞으로 잘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결혼 전에 확인해야 하는 ‘경제관’이라는 건 무엇이고,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첫째 방법은 각자의 소비 행태를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돈을 어떻게 쓰는가가 아니라 그 ‘삶의 태도’가 어떠한가를 가늠해보라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미래를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현재를 위해서 사는가?’ 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남편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자기 명의의 아파트는 세를 주고, 자신은 수도권 변두리에 셋집을 얻어 삽니다. 왜냐하면 두 집의 보증금 차액으로 다른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출퇴근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하루 두세 시간씩 걸려도,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 '현재 지향적'인 부인은 내 집을 놔두고 생고생을 하는 게 영 마땅치 않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나중을 위해서 무조건 아끼자고 만 하니, 부인으로서는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다가 뉴스에서 부동산이 하락하고 있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남편의 결정을 ‘투자’가 아닌 ‘투기’로 몰아세우며 싸우게 됩니다.

이처럼 경제관이 다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태도가 달라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문제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명확한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타협도 어렵습니다. 설령 어느 한쪽이 양보하며 산다고 해도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되면 언제든지 갈등이 불거질 여지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투자 성향’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투자라는 것은, 현재의 만족이나 미래의 수익을 얻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의 신혼 부부라면 “지금 형편도 넉넉지 않은데 무슨 투자냐?”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난할수록 투자는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진 재화가 한정된 경우일수록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분명히 드러날 수 있고 또 그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교육비를 소비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교육관은 물론 그 인생관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투자 성향이 다르고 공동의 꿈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만 살다가, 어느 순간 허무함에 빠진 부부들이 꽤 많습니다. 반면에 비슷한 투자 성향을 가지고 있는 부부들은 생활의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살기 때문에 그런 허무감에 빠지지 않습니다. 공동의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속력이 강할 뿐 아니라 장차 성취감을 가질 기회도 더 많습니다.

오늘날 불행히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커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진정 서로를 사랑한다면, 지금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미루지 않기를 권합니다. 두 사람이 비슷하고 건전한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은 비록 힘이 들더라도 행복한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서 결혼하는 것이 결코 무모한 결정이 아니라는 점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과연 얼마만한 돈을 가지면, 그래서 얼마 정도의 아파트에 어느 정도의 살림을 장만할 수 있으면 결혼할 자신이 생길 것인가요? 그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는 조금이라도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수고한 그가 결국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고작 그의 몸을 집어넣을 수 있는 넓이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새 인생을 시작하는데 최소로 필요한 조건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여 함께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부디, 결혼을 미루면서까지 돈을 늘리려는 노력보다는, 비록 빈약한 살림이라도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사랑을 키워가려는 당신 두 사람의 노력이야말로 비교할 데 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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