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얼마만큼의 힐링이 필요한 가 [오승종 칼럼]

오승종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7.01.13l수정2017.01.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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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오승종의 꼭 맞는 안경] 바야흐로 ‘힐링’의 시대다. 그 명확한 시작 시기는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 곳곳엔 가지각색의 힐링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각종 광고 문구와 책의 제목, 노래 가사에는 그 뚜렷한 의미마저 불분명한 힐링이란 단어가 속속들이 애용되고 있다.

이 다소 몰개성적인 힐링 문화의 산물들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힘들지? 그땐 다 그런 거야.’ 혹은 ‘여유를 가져! 나중엔 다 잘 될 거야~’등의 말들이다. 힐링의 대세가 꽤 오랜 시간동안 비슷한 레퍼토리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먹혀들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이혼율 3위,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면 옷을 못 입거나 밥을 굶는 일은 그리 흔치 않는 일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런 한국인들에게 ‘안심’이란 단어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여린 잣대로나마 그 이유를 따져보면, 우리는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멜 나이부터 함께 걷는 것보단 앞서 달리는 것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였더라도 달리기 시합인 이상 우리의 양 옆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나보다 앞선 사람, 내 뒤에 있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의 사회에서 모두가 한번쯤은 ‘외롭다’고 생각해 볼 법 하고, 또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것 역시 이상할 일이 아니다. 필자는 현재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린 힐링 문화가 바로 이 점을 절묘하게 노린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힐링 문화가 가진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두루뭉술함’이다. 왠지 그럴싸하게, 모두가 겪어봤을 법한 상황과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들릴 말투로 접근함으로써 마치 당신에게 딱 맞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포근함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며 눈길이 가게끔, 지갑을 열게끔 만들고 결국엔 ‘나에게 꼭 필요한 거니까’란 관대함마저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인들, 특히나 수험 제도와 경쟁 사회에 살이 맞닿아있는 청춘들에게 자신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은 존재의 접근은 달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청춘들에게 힐링 문화가 어느 정도까지 자리 잡고 있는 지 파악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 당장 인기 있는 아무 SNS에나 계정 하나를 만들어보라. 해당 SNS를 통해 올라오는 수많은 게시물 중엔 분명 ‘힐링’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온갖 여행지와 맛집, 혹은 여타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엔 바쁘게 살아가면서 본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물들어버린 힐링 문화 속에서 본인에게 그리 필요치 않은 주사를 놓고 있는 사람들 역시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힐링 문화가 주는 관대함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대란 나이,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 매력적인 시간대라 생각한다. 대학 입시 그리고 남자들에겐 병역 의무라는 큰 과제를 끝낸 지금은, 왠지 회사와 가정에 ‘올 인’하고 있을 것만 같은 30대가 오기 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놀이터처럼 느껴진다.

말 뜻 부터가 너무나 예쁜 청춘이란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리는 기간이다. 왠지 이 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 즐겨도 될 것만 같지만, 아쉽게도 분명한 사실은 여전히 레이스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삶 전체에 걸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한다면, 미래의 자신을 위해 20대인 지금 스스로에게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힐링 문화는 이제 더 이상 상품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홀로 떠나보는 여행, 연인과의 데이트, 여유롭게 즐기는 취미 생활 등 제법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도 ‘힐링’이란 이름 아래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청춘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무의미하다고도 이야기 할 수 있는 행위들도 힐링의 포장 아래에는 필요한 일들이 된다. 이제 힐링 문화는 우리가 사용하고 소비하는 상품들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보내는 시간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힐링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분명 ‘치유’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일부 청춘들에게 깊이 있게 박혀있는 힐링에 대한 인식은 본 의미를 상실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본인에게 더 귀중한 것들을 ‘힐링’하느라 지나치는 청춘들이 적지 않다.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오진된 마취다. 수년 동안 단단해진 한국의 힐링 문화는 고작 몇 해만 지나면 사회라는 장벽과 맞닥뜨릴 몇몇 청춘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고 있다. 이것을 오진된 마취라 표현한 이유는 그들의 신경이 돌아왔을 때,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있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이다. 쉬는 시간이라는 것,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문화, SNS, 온갖 미디어 매체들에 노출된 이 힐링 문화에 담긴 달콤함에 본인을 한없이 너그러이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히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무표정하게 책장을 넘기던 수험생 시절보다도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투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뜨끔하단 생각이 드는 청춘이 있다면, 자기 자신이 보낸 ‘소중했던’ 시간들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을 좀먹는 시간들을 숭고한 치유의 시간으로 여기며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말이 잔인한가? 준비되지 않은 청춘에게 정신이 들었을 때 닥쳐있을 사회의 본 모습은 이보다 몇 배는 더 잔인하다.

오승종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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