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주동일 청춘칼럼] ‘아버지를 따라 그림자를 쫓던 은교는 무재라는 연인을 만나 일상으로 돌아온다.’

지하철이 광화문에 다다를 즈음 덮은 소설의 제목은 ‘백(百)의 그림자’였다. 표지에 쓰인 ‘百’은 ‘白’ 위에 획을 하나 더 그은 모양이다. ‘가득 찬’ 혹은 ‘완전한’을 뜻하는 百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을 상징하는 白과 고작 획 하나 달랐다. 발음부터 모양까지 꼭 닮은 그 둘은, 획 하나를 두고 정 반대 의미에 서 있었다.

획 하나를 두고 정 반대에 서 있었다.

광화문에 가로놓인 차벽 하나를 두고 아버지의 마음은 시청역 앞에, 그를 꼭 닮은 나는 광화문 앞에 서 있다. 가방에서 새하얀 LED 촛불을 꺼낸다. 차벽 너머에선 새하얀 바탕에 검은 획이 그어진 태극기를 꺼낸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는 뉴스에서 연일 보도하는 광우병 반대 시위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잔뜩 흥분한 나에게 말했다. 민주적으로는 옳지 않을지라도 이미 체결된 협정은 따라야해, 너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이상적이야, 대통령이 나가고 협정을 취소한 다음, 그 대안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획’을 본 그 날, 화가 나기보다는 아찔했다. 아버지와 같은 의견을 말하는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는 충격과 그걸 반박할 수 없는 자괴. 그리고 아버지와 꼭 닮은 내가 언젠가 아버지처럼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결국 나와 정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나와 고작 하나가 달랐다. 고작 한 ‘획’. 그들이 말하기로는 ‘현실’.

지금의 정권이 내려온 뒤,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질 비를 막을 그 견고한 획. 아버지는 그 획을 원했고, 그 획은 이제 광화문의 차벽으로 섰다. 그리고 차벽은 기성문화에 저항하며 20대를 연극배우로 보낸 아버지와, 작가를 꿈꾸는 이십대의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버지와 함께 광우병 뉴스를 봤던 그 날부터, 나는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내가 공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현실적일까, 그게 이 사회를 ‘진보’시킬까, 대안 없이 외쳐대는 내 주장은 무책임이자 퇴보 아닐까.

“진보는 무슨, ‘빽도’겠지!”

광화문역을 빠져나와 시청역으로 향한다. 형광색 점퍼를 걸친 경찰 행렬 뒤로 차벽이 서있다. 수천 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그 너머. 우리가 눈감은 이들이라 부르는 그들의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정의의 탈을 쓴 위선적인 종북 세력 혹은 비논리적인 이상주의자들에게 저항하는 새로운 3.1운동이 보일까. 그런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우리가 싸워갈 논적이자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이들은 그들 전부다. 차벽을 ‘현실’이라 혹은 ‘논리’의 한계선이라 부르는 순간, 그들 눈에 우리는 비현실 그 자체로 보이게 되었고 우리의 눈에 차벽 너머는 비논리의 장으로 변질됐다. 그렇게 모두 눈을 감는다. 우리의 촛불도, 차벽 너머의 태극기도 눈을 감는다.

“데카르트를 넘어 기 드보르와 장 보드리아르로 이어지는 의견을 종합하면,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것은 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거나, 현실을 단일한 시야로 보는 순간 우리는 현실의 단면 혹은 허상을 현실 그 자체라 믿게 됩니다.”

스물세 살 어느 날, 형이상학 수업을 맡은 교수님의 한 마디였다. 차벽은 현실이라 불리는, 혹은 그렇게 믿어지는 장막이다. 촛불을 든 이들은 태극기를 든 이들의 논리에 귀를 닫았고, 태극기를 든 이들은 현실을 해결하는 방법이 단일하다고 믿었다. 우리의 논적은 비논리적이지 않고, 아버지가 믿는 ‘현실성’은 단일한 방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내일을 막연히 믿었고, 아버지는 오늘에 갇혀 내일을 잊었다. 문득 아버지에게 묻고 싶다. 현재에 갇혀있는 것 보다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우리의 머리 위를 가로막은 그 선, 그걸 없애면 내일은 완전하지 않더라도 새하얀 가능성으로 가득 찰 텐데. 우리 머리 위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내리고 있는데.

눈 덮인 서울시 도로를 따라 긴 행렬이 출발한다. 북소리는 밤공기를 뚫고 도로 멀리까지 날아간다. 사람들은 ‘구속’과 ‘탄핵’에 맞춰 나팔을 힘껏 분다.

몇 달 전, 학교 교지에 실을 학내 극단 인터뷰 기사를 쓰다 말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연극 그만둔 거 후회 안 하세요?”

“그 덕에 회사 들어가서 너희 엄마 만나고 너희들 잘 키웠으니 후회는 없다. 사실 연극으로만 먹고 살 만큼 재능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래도 많이 아쉽지. 그래서 요즘 색소폰이라도 배워서 열심히 불고 있잖아.”

눈앞에 펼쳐진 촛불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북소리 사이로 들리는 이름 모를 나팔 소리가 서울의 밤거리를 채워간다. 눈은 태극기 위에도, 촛불 위에도 쌓인다. 어깨 가득 눈이 쌓인 새하얀 행렬은 머리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고스란히 맞으며 종각을 향해 앞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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