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백재열 청춘칼럼] 학생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학생들이 남긴 잔반을 처리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리는 고사하고 운반만으로도 버거워 보이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비분강개를 금치 못하기엔 나도 그리 떳떳한 입장은 아니었다. 단지 입맛이 맞지 않아서 적지 않은 양의 잔반을 버리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인간의 모든 서러움 중에서 가장 사무치는 것이 바로 굶주림에 대한 서러움이라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접하는 독자들 중에서 굶주림에 대한 서러움과 공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사정은 다르다.

2006년 10월,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꼴로 굶어 죽었으며, 3분에 1명이 비타민 A의 부족으로 시력을 잃었다. 거기에 8억 5000만 명, 지구촌 인구 7명 중 1명이 만성적 영양실조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열악하다. 전체 인구의 36%가 굶주림이 일상화 되었다고 한다. 먼 나라의 상황이 아니다. 북한 주민들의 처지 역시 절망적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 UN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이었던 ‘장 지글러’는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을 아들인 ‘카림’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설명한다. 전 세계에는 약 73억 명으로 추정되는 인구가 있으며 세계 시장에 나와 있는 식량은 현 인구의 두 배조차 넉넉히 먹일 양이다. 하지만 세계의 기아는 8억 명 정도로 추정되는 실로 어마어마한 수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세계의 식량은 남아도는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것인가.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1/4를 부유한 국가의 소들이 먹는다. 미국에서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이 연간 50만 톤에 달한다. 즉,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면서 만성적인 기아에 허덕이는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 식량보다 수백 배나 많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세계 시장에 곡식이 모자라는 현상이 발생하며 이곳에서 거래되는 모든 농산품의 가격이 투기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농산품의 가격과 거래가 몇 안 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소는 배불리 먹으면서 사람은 굶는, 이러한 모순된 현실은 필자로 하여금 힘을 빠지게 한다. 이것이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아의 원인이 늘 자연재해나 정치 부패, 시장 가격 조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 역시도 커다란 원인이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15%에도 못 미치는 비율이건만 기아 인구의 25% 이상이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 남 수단, 시에라리온 등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심각한 기아를 초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외부의 식량 원조가 필요한 정치 난민 2,500만 명 중 반수가 아프리카의 난민캠프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후원? 있다! 하지만 전달 구조에 문제가 있다. 후원물품의 대부분을 권력층이나 반군이 가로채 악용되고 있다. 지난날, 우리가 북한 주민들에게 지원했던 쌀을 북한정권이 가로채 악용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주린 배를 쥐고 죽어가고 있다. 단 한 번도 배부르게 먹어본 적이 없었을, 포만감을 일생동안 결코 알지 못하고 살다가 결국은 굶어죽는 아이들이.

오늘밤, 나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쉽게 잠들 수가 없다. 세계의 절반은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식사량을 줄이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찬란한 21세기,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모르는 나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지를 생각한다. 따뜻한 식사를 배불리 마치고 난방이 잘 되는 더운 방에서 책상 위 스탠드 불까지 밝혀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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