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최민정의 태평가] 침대에서 더 뒹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이기에 오늘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르바이트를 하러간다. 계속 되는 갑질에 몇 번씩 주먹을 쥐었다 피다가도 나는 을, 아니 어쩌면 병, 아니 어쩌면 정에 불과하니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사장님. 자존심이 밥 먹여주던가? 아르바이트비는 밥을 먹여준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버텼다. 문을 열고나오니 찬바람이 날 마주한다. 봄이라더니 아직도 춥기만 한 게, 꼭 내가 처한 상황 같다. 청춘, 만물이 푸른 봄철. 세상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푸른 잎은커녕 온통 회색인게 여전히 춥기만 하다.

대학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고, 마법처럼 한 번에 멋진 어른으로 변신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저 어른의 가죽을 뒤집어 쓴 멍청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물려받은 수저의 재질도 탓해보고 못난 나를 탓하기도 해봤지만 기분만 나빠질 뿐 해결되는 건 없었다. 밥을 먹다가도 , tv를 보며 깔깔대다가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답답함과 불안감에 명치 부근이 체한 것처럼 아렸다.

이 약도 없는 통증은 무엇 때문일까. 단지 우리가 청춘이라서? 다들 언제는 청춘이라며 추켜 세워주더니, 이제 청춘이니까 아파야 된다고 말한다. 아직 봄은 오지도 않았는데, 이럴 때만 청춘이라는 핑계를 대자니 반발심이 든다.

그래서 난 조금 더 로맨틱한 핑계를 제안하고자한다. 꽃이 피어나는 것이 샘이 난 겨울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지금 우리에겐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이라,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

이미 자존심은 헐값이 되어버린지 오래지만, 매서운 추위에 굴복해 버리기에는 내 젊음이 너무 가엾다. 일말의 자존심을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새싹이라도 피워보련다. 보도블록을 비집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도 있지 않은가.

드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적처럼 세상에 와준 우리를, 청춘이라는 아리따운 별명을 가진 우리를, 온 우주가 질투하고 있나보다. 모든 아픔이 우리가 피울 꽃을 향한 치기어린 시기일 뿐, 봄은 언젠가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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