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조다영 청춘칼럼] 스무 살에게 3월은 개강과 동시에 첫 수업, 첫 선배와의 대면으로 캠퍼스에는 호기심과 설렘이 일렁거리게 된다. 멋진 선배와의 연애를 꿈꾸기도 하고 처음으로 성인이 되어 하는 연애는 어떤 느낌일까? 귀여운 환상을 가지기도 한다. 

4월이 되어 벚꽃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각자 ‘아, 나도 애인이랑 같이 벚꽃구경 했으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과팅, 미팅, 소개팅 등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많은 커플이 탄생된다.

나 역시도 비슷한 시기에 많은 친구들이 연애를 시작하자 뒤처지기 싫은 마음으로 남자를 만났었다. ‘그래, 이정도면 나쁘지 않지’로 시작한 연애가 ‘지내다보면 사랑에 빠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연애를 버텨가는 것으로 변질되었고 끝내 사랑에 빠지지 못한 채 나의 첫 연애를 마무리 했어야 했다.

어떤 친구는 내게 그저 권태기가 빨리 찾아온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권태기가 찾아올 정도로 깊이 사랑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연애를 허무하게 실패하고 나서 나는 연애가 목적이 되는 사랑, ‘지내다보면 사랑에 빠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연애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내게 ‘아직도 혼자야?’, ‘젊었을 때 조건 없이 연애하지 벌써부터 재고 따지고 들면 어떡하려고’라고 말한다. ‘연애 안 해?’라는 말이 이제는 무슨 하나의 필수 과정을 해결해야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것일까, 픽업 아티스트니 뭐니 하며 연애를 코치해주는 직업이 나오기 시작하고 짝짓기 프로그램이 성행하며 우스갯소리로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남자가 생기지 않으면 영원히 생기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모태솔로라고 말한다면 마치 자신을 하자가 있는 사람, 가엾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요즘의 연애는 젊었을 때 당연히 해야 하는 필연의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치 ‘연애’ 자체에 성공하면 어딘가 대단한 사람인 마냥, 연인의 스펙이 자신의 스펙인 마냥 여기는 풍토가 되어버렸다. 솔로가 커플을 지적하면 무조건 ‘부러워서 그러지?’라는 질투로 치부해버리고 심지어는 솔로인 이유가 있다며 상대방의 외모, 성격 등을 마음대로 폄하하기도 한다.

특히 SNS가 성행하면서 보여주기 식의 연애와 ‘그 나이되도록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 그건 그 사람한테도 문제가 있는 거야.’ 이런 사회적 낙인이 연애가 스펙이 되는 세상을 부추기고 있다.

궁극적으로 연애를 하려는 이유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행복의 수단을 연애로 강요하지 말고 연애의 성공이 그 사람은 능력이 있다는 위험한 흑백논리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모두가 연애를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정형화된 인생의 틀을 요구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한 사회가 아닐까? 사랑의 감정은 개인에게 맡겨두고 모두가 연애하고 있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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