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자현의 시시(詩詩)한 이야기]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오세영, ‘그릇1’ 부분, 시집 <모순의 흙> 중

아버지는 서예가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8년 전, 아버지는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집을 임차하여 작업실로 썼다. 대문을 열어두는 때가 많았다. 이따금 서예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구경하고, 차도 한잔씩 마시고 가곤했다.

한옥마을은 여유 있었고 또 조화로웠다. 주민들의 삶과 어우러진 생활가옥과 부채, 한지, 목공예, 서예 분야 등 명인의 집이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고, 전통 술 박물관, 한옥 생활 체험관, 미술관 등도 곳곳에 있었다.

한옥마을을 쭉 둘러보고 나서 가족들과 한정식을 먹을 때도 있었고, 한옥마을 가장자리에 위치한 콩나물 국밥집에서 종종 국밥을 먹기도 했다. 한옥이라는 건축적 동질 속에 조용한 전통 찻집과 카페, 그리고 왁자지껄한 막걸리 집이 어우러져 나름의 운치를 더했다.

그러한 선호는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입소문을 타고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늘기 시작했다. 기억하건대 2011년 여름, 겨울 휴가철부터 눈에 띄게 사람들이 늘었고, 한번 늘기 시작한 사람들은 한옥마을의 규모를 키웠다. 한옥마을의 규모가 커지면 또다시 사람이 늘었다.

관광객의 증가와 임대료의 상승은 맞물린 것이어서,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 외에 개인 예술가들의 부담은 커졌다. 아버지의 작업실이라고 예외일리 없었다. 아버지는 작업실을 옮겼고, 작업실이 있던 자리엔 프랜차이즈 보쌈집이 들어섰다. 이어서 수많은 관광인파의 SNS를 타고 ‘명물’이며 ‘맛집’들이 생겨났다.

언제부터 전주 한옥마을을 대표했는지 모르는 떡갈비집과 빵집, 꼬치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어서 이름이 다르고 업종이 같은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한옥마을의 중심 태조로를 점령했다. 가게마다 사람을 끌어들이느라 간판으로 전쟁을 벌였다.

한옥마을은 몇 년 새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바뀌었을 뿐, 결코 발전이라 하지 않겠다. ‘전주 한옥마을 붐’, ‘연 관광객 1000만 시대가 눈앞’이라는 장밋빛 기사가 나오지만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지금 한옥마을은 딱 인증 샷이나 남기기 좋은 곳이다.

남들 다 가니까 한번 가보는 곳으로, 두 번 갈일 없는 곳으로. 너나없이 족보 없는 길거리 음식을 손에 쥔 풍요 속에, 정작 무엇을 보고 가는지 모르는 문화적 빈곤이 한옥마을을 관통한다. 전주시는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여느 관광지들의 전례를 대충만 보아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을까.

우선 사람이 모이고 돈이 벌리니 잘 되는 것 같으니 놔둔 것일까. 뒤늦게 길거리 음식 판매업소를 규제하는 안들을 내놓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보면 연기, 냄새 배출을 위한 환풍 시설만 잘 갖추도록 한 정도다. 여전히 한옥마을은 정체성 없는 명물들의 홍수 속에 있다.

이제는 위기다. 결국에 붐은, 거품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한번 가라앉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한옥마을이 성장할 수 있었던 문화적 배경과 정신을 기억해야한다.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전통과 현대의 균형 있는 공존 속에서 한옥마을은 성장했다. 한옥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의 멋, 그리고 한 마을이 가지는 사람냄새, 그 안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풍기는 문화적 향기, 그리고 전주의 ‘맛’까지 더해져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꼬치집과 같은 상업시설들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퇴출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균형을 잃어가고 있으니 위기라는 것이다. 한옥마을은 관광지이지만, 동시에 전주의 자존심이어야 한다. 관광인구가 조금 더디게 늘더라도, 전주 한옥마을만의 멋을 가지고 가야한다.

균형 있게 발전해야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이 머문다. 그러면 한번 왔어도 또 오고 싶은 곳이 된다. 마음먹고 더 오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된다. 돈벌이는 절로 따라올 것이다. 절제와 균형에서 빗나간 힘은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깨어진 조각은 칼날이 되어 살을 벨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지금 안타까운 그릇이다. 그릇이 깨어지기 전에 손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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