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강동형의 시사 논평]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과거에 쓴 책에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기사와 방송을 접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탁현민이라는 이름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여성단체까지 나서 탁 행정관을 경질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그 이유가 궁금했다. 기사를 읽어 봐도 탁 행정관이 왜 문제가 되는지 원인이 부실하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부적절하니 내치라는 주장 속에 문제의 글들이 단편적으로 실려 있었다.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 ‘임신한 선생님들도 섹시했다’ ‘첫 성 경험, 좋아하는 애가 아니라서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었다. 친구들과 공유했던 여자’ ‘대중교통 막차 시간을 맞추는 여자는 구질구질해 보인다’ ‘이왕 짧은 옷 안에 무언가 받쳐 입지 마라’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허리를 숙였을 때 젖무덤이 보이는 여자가 끌린다’ 등등. 언론보도는 탁 행정관이 쓴 책 내용을 소개한 뒤 이는 여성을 폄하하고 모욕하는 듯한 내용이라는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참여하는 행사를 책임지는 고위공직자에 그를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며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는 책 이름은 있지만 어떤 목적의 책인지는 소개하지 않고 있다. 기사에서 예를 든 내용을 점잖은 어른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고, 부적절하다. 일부 내용은 드러내 밝히기가 민망한 사적영역이다. 야당은 물론, 여성단체, 여당 여성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고위공직자의 글이라고 믿기지도 않는다.

그가 쓴 책들을 찾아봤다. 그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도 알아봤다. 인터넷에 탁현민 이름석자만 쳐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가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유능한 무대 연출가이고, 20대부터 최근까지 무려 9권의 책을 세상에 내 놓은 작가였다. 뚜껑열리는 라이브콘서트 만들기(2004), 탁현민의 재미있는 무대밖 이야기(2006), 말 할수록 자유로워진다(2007), 남자마음 설명서(2007), 상상력에 권력을(2010), 공연행사제작매뉴얼(2012), 탁현민의 멘션s(2012), 흔들거리며(2013), 당신의 서쪽에서(2014) 등이다.

▲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그를 향한 비난은 2007년에 쓴 ‘말할수록 자유로워진다’와 ‘남자 마음 설명서’ 두 권에 집중돼 있는 듯하다. 과연 이 책들이 어떤 목적으로 쓰였을까.

‘말할수록 자유로워진다’를 소개한 글이다. <세상에서 가장 수다스러운 네 남녀, 기자 공연기획자 콘텐츠에디터 등 한국 문화의 최전선에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남녀가 모여 고정관념 때문에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10가지 주제에 대해 신랄하고 발칙하게 떠든 내용을 그대로 담아냈다. 중략, 20~30대의 네 남녀가 한국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유쾌한 수다. 대표적인 금기어인 '섹스'라는 주제로 첫 경험의 아련한 추억과 성적인 판타지, 그리고 성적 취향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쁜 여자', '나쁜 남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을 만난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네 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 졌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고상함을 요구하는 것은 돌고래를 보겠다며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친김에 남자마음 설명서의 내용도 살펴보자. <남자들의 속마음을 궁금해하는 여자들을 위해 남자가 만나보고 싶어 하는 여자, 좋아하는 여자, 사랑하는 여자, 헤어지고 싶어 하는 여자, 그리고 그리워하는 여자 등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 > 책 소개에 사족을 더한다면 탁현민이라는 사내가 남자를 대표해서 남자의 마음은 이렇다는 것을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집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남성 입장에서 보면 자존심 상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자기가 모든 남자를 대표해....아무튼 그렇고 그런 책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두 권의 책이 2007년에 출간된 것을 보면 그가 30대 초반에 쓴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두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내용만 떼어 놓고 보면 부적절한 대목이지만 책 제목과 책을 만든 의도를 놓고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상상력의 산물이고, 경험담이고 어엿한 창작물이다. 그런데도 왜 정치권과 여성단체, 나아가 보수언론은 탁현민 행정관의 경질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이들의 요구는 정당한가.

▲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창작물에 대한 비판은 자유다.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자유로운 비판 역시 표현의 자유인 까닭이다. 따라서 탁행정관이 쓴 책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저속하고, 여성비하적이라고한다면 이를 비판하면 된다. 그건 독자의 몫이고, 시민의 권리다. 죄가 되면 단죄하면 된다. 그를 경질하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비판의 금도를 넘어선 박해 수준이다. 비판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인 그를 희생양 삼아 문 대통령에게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여성단체나 여당 여성의원들의 행동에서도 집단 가치를 우선시 하는 우리와 그들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상식적 도덕의 비극을 엿볼 수 있다. 우리사회가 성숙한 민주사회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탁현민 선임 행정관의 책과 부적절한 표현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특정 주제로 쓴 그의 책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경질을 요구하는 이들의 행태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역시 구태 중의 구태다. 글의 부적절성에 대한 비판은 수용할 수 있지만 박해로까지는 번져서는 안된다. 그의 글이 개인이나 집단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단죄 받게 하고 응분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우리 인간은 표현을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가장 잘 보장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억합하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도 만들 수 없다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며, 민주주의의 강령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탁 행정관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표현을 억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청와대는 탁 행정관을 내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를 경질하는 것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위축시키고 후퇴시키는 일이다. 더 이상 탁 행정관 거취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울러 경질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질 않길 기대한다. 표현의 자유는 탁 행정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겨야 하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인 까닭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