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윤쓰의 ‘청춘 여행기’] 두근대는 마음으로 무궁화호에 올랐다. 올해 갓 성인이 되어 ‘청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서 처음으로 ‘청춘’다운 무언가에 도전해본 것이다. 만 24세 이하까지만 누릴 수 있다는 내일로 기차여행.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훌쩍 올라탄 무궁화호 안에는 배낭을 멘, 왠지 나와 같은 내일러의 향기를 풍기는 몇몇 무리들이 보였다. 젊음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 청춘들을 싣고 기차는 천천히 출발하였다.

혼자서의 여행은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제일 처음 코스인 ‘안동역’은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버스 기사 아저씨나 동네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가르쳐주고 관광지를 소개해주었다. 안동에서 월령교의 야경이 유명하다 길래 늦은 오후에 도착해 다리에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렸다. 벤치에 앉아서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있으니 하나 둘씩 다리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월령교 야경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다리 위의 정자에는 불이 안 켜지는 것이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막차가 7시 30분이라고 했었는데 7시 30분에는 이제 막 다리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냥 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끝까지 야경을 보기로 결심하고 아무 대책 없이 막차를 보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상황에서 우산을 펴고 미련하게 벤치에 앉아 정자에 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2시간을 더 벤치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 불이 켜진 정자를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완벽한 야경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벤치에 앉아 비 냄새를 맡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시간 자체가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둘째 날이 나 홀로 여행의 가장 큰 고비였다. 강원도 묵호역에 내리니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다. 같이 기차에서 내린 여자 두 명이 우비를 쓰고 역 밖에 나가길래 나도 망설이다 나갔지만 신발이고 옷이고 홀딱 젖어 다시 역 안으로 들어왔다. 코스를 변경할까, 아님 오늘은 여행을 하지 말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났다.

그렇게 1시간을 짜증이 난 채로 역 안의 대기실에 앉아있으니 슬슬 오기가 생겼다. 신발 안에 물이 철벅철벅 느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역 밖을 나가 근처 마트에 가서 우비와 슬리퍼를 샀다. 그러고선 운동화를 벗어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묵호항을 향해 걸었다. 중간에 배가 너무 고파서 아무 국밥집이나 들어가 국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급하게 먹어서 다음날까지 입천장이 벗겨져 고생했다.

슬리퍼를 신고 꽤 가파른 묵호 논골담길을 오르고 맨 꼭대기에 있는 묵호 등대에 다다랐다. 계획했던 묵호항과 등대, 출렁다리를 다 보고 나서 내려왔다. 찜질방에 도착했을 때는 발가락이 다 헐고 카운터 직원이 놀랄 정도로 흠뻑 젖어있었다.

셋째 날과 넷째 날에는 강릉, 정동진에서 바다를 보고 썬 크루즈, 조각공원 같은 유명한 데를 갔다. 여행코스를 짤 때는 그 지역의 명소들을 기준으로 짜는 법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여행을 갔다 오고 난 뒤에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둘러본 각 지역의 명소들이 아니었다. 안동에서 월령교 야경을 보기 위해 미련하게 기다리면서 앉아있던 시간, 폭우 속에서 슬리퍼를 신고 묵호 등대에 다다랐던 것, 혼자 헬맷을 쓰고 아무도 없는 동굴 안에 들어갔던 때, 칼국수를 먹기 위해 인도 없는 도로를 걸었던 기억.

‘청춘’의 타이틀을 달고 ‘청춘’다운 것을 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은 내 생각처럼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여행을 곱씹어 볼 때 추억이 되고 웃음이 나는 기억은 내가 ‘무모한 짓’을 저절렀을 때다. 청춘이기에, 젊기에 할 수 있었던 무모한 짓들. 예쁜 야경을 보기 위해 막차를 놓치고 미련하게 폭우 속을 걸어도 “청춘이니까”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대책 없는 행동들 말이다.

‘청춘’은 예쁘고 완벽한 게 아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청춘’인 것이고 그 시절이 기억에 남는 것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의 열차까페에 쭈그려 앉아 있는 내일러들은 고된 여행에 꼬질꼬질하고 힘들어 보였다. 그렇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쉴새없이 재잘재잘 대며 그들의 싱싱함을 뽐냈다. 우린 청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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