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이성우의 세계와 우리] 유럽에서 다자협력체의 발전을 통한 평화와 번영의 제도화는 동아시아의 다자협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탈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다자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 국제의회주의에 기초한 다자협력에 대한 기대는 동아시아의 다자협력구도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했다. 이와 동시에 탈냉전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국제적 위협은 본질에 있어서 군사적인 위협은 아닌 그렇지만 소수의 초강대국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초국가적 성격을 가지는 형태로 나타났다. 새로운 초국가적 위협으로 테러리즘, 기후변화, 원자력 안전, 전염병, 마약, 해양오염과 같은 문제들이 등장했고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다수의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협력이 대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해양환경문제는 본질적으로 초국가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다자협력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분야 중에 하나로 판단된다. ‘바다는 경계가 없다’는 말처럼 개별 국가의 영해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있지만 육지와 달리 인위적 경계를 통해 자연적 흐름을 차단하는 물리적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연적인 측면에서도 구분이나 한계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표면의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물의 덩어리라는 점에서 상호의존적인 특징을 가진다.

해양환경 분야에서 현재 주목받고 있는 위협으로 해양쓰레기, 기름유출사고, 선박 평형수에 의한 생태계교란,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같은 빈발하는 자연재해, 산호초·맹그로브·수산자원 및 기타 천연자원의 파괴, 궁극적으로 생물다양성의 상실, 내륙에서 발생하는 하천의 오염에 따른 해양의 부영양화와 같은 전통적인 위험이 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선 오염수의 해양유출은 해양을 매개로 한 환경오염이 단기적으로는 국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새로운 해양환경위협이 등장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해양환경 분야의 국제협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1993년 ‘동아시아해양의 해양오염의 방지와 관리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1999년 성공적으로 완료하였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해양문제에 관해서 국가 간의 신뢰구축과 당사자국들의 파트너쉽을 발전시킬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아시아해양환경관리협력기구』 (Partnerships in Environmental Management for the Seas of East Asia: PEMSEA)를 구축하였다. PEMSEA에 참여하는 11개 회원국들은 -캄보디아,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북한, 라오인민민주공화국, 필리핀, 한국, 싱가포르, 동티모르, 베트남- 2003년 『동아시아해양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지역협력』 (Sustainable Development Strategy for the Seas of East Asia: SDS-SEA)에 관한 Putrajaya선언을 채택하였다. 이후 2006년 SDS-SEA의 이행에 관한 Haikou 파트너쉽 협정의 채택과 2009년 PEMSEA의 국제적 법인격 승인협정의 채택을 통하여 PEMSEA를 동아시아해양의 지역적 국제기구로 발전시켜 왔다. 해양환경에 대한 협력은 세계적 차원에서 보다는 지역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해양환경협력의 상당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로의 발전과 협력의 제도화에 있어서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역내 다자협력의 추진에 주어진 장애요인을 선도적으로 극복하고 성공적인 다자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원자력 안전, 에너지 안보, 환경보호, 재난관리, 사이버스페이스, 보건, 마약을 포함하는 이른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추진해왔다. 다양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해양환경협력은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선도적인 협력의 성공사례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정책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의 해양이 패권경쟁,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그리고 한일과 중일 간의 영유권 문제가 있지만 해양의 평화적 관리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다자협력의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PEMSEA와 협조를 통해 연안․해양 통합관리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동아시아의 해양환경협력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만 해양환경 문제에 있어 협력의 제도화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그 원인을 논의하는 것이 향후 동아시아 해양안보협력의 발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해양환경협력의 위기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북아 지역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은 확대되지만 정치안보에서 협력은 이에 상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역내 국가들 사이에 신뢰의 축적과 그로 인한 협력의 제도화가 정착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안보의 위기가 환경의 협력을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영유권 경쟁에 따른 군사적 긴장은 해양환경협력에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둘째, 다자협력의 경험이 부족한 동아시아에서 다자주의의 시도는 다수 있었지만 ‘개방적 파트너쉽’을 추구하기 보다는 ‘폐쇄적 맴버십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동아시아의 다자협력은 협력적 질서 구축을 위한 협의체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동아시아에서 해양환경 분야에서 협력이 순조롭게 추진되기에는 국가 주권과 관련된 전통적 갈등이 너무 첨예하다. 해양경계선 획정문제, 항공방위식별구역, 영토주권, 해양자원개발, 군사전략적 안보문제는 우리의 동해와 서해의 독도와 이어도뿐만 아니라 그리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산재하고 있다.

넷째, 새로운 위협의 출현이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위협은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협력체계의 구축은 요원하다. 군사·정치적 영역의 전통적인 경성안보 뿐 아니라 비군사·비전통의 연성안보 또는 인간안보 분야에서도 초국가적 위협과 복합적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 국경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가적 해양오염 문제는 패권국가 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해양오염이 원자력 안전과 연계되어 복합적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새로운 공조체계의 등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 이성우 박사

[이성우 박사]
University of North Texas
Ph. D International relations
현)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정치학 박사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