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조경남 교수의 사람을 살리는 약초] 멋진 나무집을 짓고 싶다면 능숙한 목수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만약 목수가 부족해서 철공(鐵工)에 능숙한 사람에게 나무집을 지어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마다 능숙하게 해내는 일이 다르다. 따라서 해당 분야의 전공자(專攻者)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에게만 전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생물도 그 종류에 따라 전공(專攻)이 다르다. 어떤 미생물은 채소를 분해하는 것이 전공이고, 어떤 미생물은 고기를 분해하는 것이 전공이다. 이처럼 전공분야가 각각 다른 수많은 미생물들이 자연계에 존재하며, 사람의 장(腸)에도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는 달라진다.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는 우리가 복용하는 약초의 효능에 영향을 준다. 한의원에서 값비싼 약을 지어 먹었을 때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먹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상반된 반응을 약 탓으로만 돌리면 안 된다. 사람의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흡수된 약을 분해하는 전공인가를 먼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식약처에서는 장내세균의 효소활성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사람의 장내에 서식하는 장내 미생물의 효소활성 차이에 따라 인삼의 효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인삼을 먹었을 때 사람의 장내 미생물은 사포닌을 체내에서 흡수 가능한 활성성분으로 분해하는데, 실험 대상자 중 약 25%는 장내 미생물의 효소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인삼 사포닌의 혈액 흡수도가 낮게 나타났다. 그리고 장내 미생물의 효소가 활성화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육식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식약처는 채식 위주의 식사가 인삼의 효능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의 장에는 고기를 분해하는 전공의 미생물이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야채가 들어오면 분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야채가 지닌 영양분의 흡수율이 떨어진다.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이 인삼을 복용했을 때 그 효능이 떨어지는 것도 인삼이 야채에 속하기 때문이다. 장에서 인삼을 분해시켜 혈액으로 흡수되게 하는 미생물의 숫자가 적으면 아무리 좋은 인삼을 복용해도 흡수가 되지 않을 것이고 약효를 얻을 수도 없다. 인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약초는 야채를 분해하는 전공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야 장에서 분해되고 혈액으로 흡수되어 그 효과가 나타난다.

동의보감에는 약을 복용할 때 돼지고기, 개고기, 고깃국, 생선회, 비늘 없는 생선 등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런 음식을 주로 섭취하면서 약초를 복용하면 장에서 약초가 분해되어 혈액으로 흡수되지 않아서 약효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약초는 합성된 약과 달리 단일 성분이 아니다. 합성된 약은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와 상관없이 흡수되어 약효를 발휘하지만, 약초는 사람이 먹는 음식처럼 장내세균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약효를 발휘한다. 따라서 약초의 효능을 얻으려면 약초를 복용할 때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경남 교수]
삼육대학교 사회교육원 약초학 교수

저서 : 만병의 근원을 다스리는 자연치유, 조경남 원장의 한방자연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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