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몸이 아픈 사람들도 움직일 것을 권유받는 세상이 되었다. 편하게 누워서 몸이 낫기를 기다리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같다. 움직이지 않고 몸을 가만히 보호하는 것에서 활동하는 쪽으로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 또한 바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형외과 관련 우스갯소리가 기억이 난다. 외과적 수술 후 의사의 권고대로 안정을 취한 환자보다는 자기 멋대로 마구 돌아다닌, 일명 가짜 환자가 더 빨리 퇴원을 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병석이 모자라 일찍 퇴원시킨 환자들이 병원에 남아있던 전우들보다 더 빨리 건강을 되찾았다는 얘기도 있다.

신체 활동만이 환자의 증세를 호전시키고 잃어버린 기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좋은 사례다. 운동의 효과는 막강하여 암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하고 심지어 수명을 연장한다는 많은 보고도 잇따른다.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던 필자의 지인은 이런 얘기를 했다. 몸이 아픈 것은 둘째치고 항상 팔뚝에 꽂혀있는 링거주사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고 말이다. 의사나 간호사들의 지침에 따라 활동에 제한을 받는 병상의 애로를 표현한 말이다.

침상 안정을 취하는 것보다 적절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병세 호전에 도움이 된다. 육체 활동의 긍정적 영향과 그 효과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약물처방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허리부위 통증으로 약국을 찾은 40대 여성의 예를 들어보자. 진통제를 몇 알 사 먹고 집에 누워 있으니 아픈 곳이 사라졌다. 이 여성이 느꼈던 통증은 근본적 치료가 된 것일까.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을 것이다.

진통제의 효과로 아픈 증상만 가라앉힌,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환자가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통증을 느낄 때 몸을 아끼면 어떻게 될까. 움직이지 않으므로 처음에는 통증이 다소 가라앉지만 장기적으로 기능 조절에 이상이 생겨 통증은 더 악화된다. 통증이 악화하면 환자는 또 몸을 사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몸을 아껴서 병이 되고 병이 생기면 몸을 아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이 몸을 아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인간은 태곳적부터 동물을 잡거나 잠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근육 활동을 해야 했다. 심지어 잠잘 때조차 혈액순환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수면 중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척이는 행위도 밤새 눌리고 뭉치는 근육을 풀어 원활한 혈행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몸은 구조적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숨을 쉬기 위해 공기가 필요하듯 인간의 근육에는 절대적으로 운동이 필요하다. 움직일 수 있다면 최대한 움직여야 한다.

인체의 표면 쪽에 자리 잡은 긴 근육은 일반적으로 운동을 관장한다. 긴 근육과 더불어 인체의 깊숙한 곳, 즉 관절 근처에 횡으로 자리 잡은 짧은 근육은 적극적으로 관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시스템에 의해 근육은 관절을 지탱하고 갑작스러운 동작이나 과부하 시에 해당 부위의 관절을 보호하게 된다. 결국, 요통을 호소한 여성의 경우에도 튼튼한 관절보호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요통뿐아니라 40대 이후에 빈번한 허리나 관절부위의 통증은 튼튼한 복부나 등 근육을 유지함으로써 80% 이상 방지할 수 있다. 몸을 아끼고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 인체의 중심축을 유지하는 시스템에 독이 될 뿐이다. 근육에 가하는 규칙적이고 적당한 부하는 근 위축과 손실을 막아 뼈나 인대를 보호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부단히 몸을 움직여야 생존할 수 있는 고단한 존재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운명을 탓할 순 없으니 지금 즉시 밖으로 나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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