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 사회가 비만한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들을 견뎌내지는 못한다.” 프랑스의 영양 전문가 트레모로리에르의 말이다. 비만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다본 시각이다. 비만은 핑계라는 무대에서 춤추고 있다며 그 원인을 개인에서 찾고자 설파한 필자의 견해와는 차이를 보인다. 사회의 책임이든, 개인의 문제든 비만의 확산은 거침이 없고 그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활동에 비해 제법 많이 먹을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나쁜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설탕으로 대표되는 단당류와 유해한 지방의 소비는 파격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비타민과 섬유질의 寶庫인 채소와 과일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아질 기미는커녕 경쟁이라도 하듯 음식의 질은 부적절해진다. 경기 부양책이라는 단어가 경제를 책임지는 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황의 시기는 어떨까. 값싼 식당을 찾는 등, 음식 소비의 행태가 달라질 뿐이지, 우리가 음식 자체의 양을 줄이진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찌기 용이한 환경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얘기다.

양껏 먹고 즐기며 무병장수할 순 없을까. 현행 확립된 영양학적, 대사적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여기서 우리가 비만으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사회적, 개인적 상처에 대해 살펴보자. 대부분 비만인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 미국의 한 실험에 의하면 비만인은 임시로 거주할 방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단지 외모만으로 이들이 게으를 거라 판단한 집 주인들이 빈방이 있음에도 임대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방 구하기가 이 모양이니 직장을 얻기는 오죽하랴.

비만이 자기 관리가 부족한 나약한 성격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사회적 편견 탓이다. 비만에 대한 편견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이들조차 뚱뚱한 체형의 또래를 묘사할 때 게으르다거나 욕심이 많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이는 비만에 대한 혐오가 어린 나이부터 뇌에 각인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방송이나 신문 등, 각종 미디어 역시 날씬한 몸을 뚱뚱한 몸과 대비하여 성공과 자기 통제, 성적 매력의 상징으로 비추어낸다. 비만인들의 심리적 위축은 바깥 활동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므로 비만의 가속화를 부추기는 또 다른 내적 요인이 된다.

이들은 비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시도한 만큼의 좌절 역시 맛본다. 체중을 줄이려는 이들의 결심은 아주 쉬운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달라진 자신의 몸을 과시하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 내보이고 심은 심리가 형성되기까지의 다이어트가 중요한데 숱한 좌절을 맛본 이들은 다시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며 약한 성격의 대표적 상징으로 해석하는 우리 사회의 냉소적 시선은 비만인의 비만 극복 의지를 꺾어, 결국 이들을 자포자기하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비만인 역시 적정 체중을 과도하게 넘어서는 일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불리한 반열에 들어서는 첫걸음임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운동생리학과 영양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비만 해결책 1순위는 단연코 식이 조절이다.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동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부차적 해결책에 불과하다. 과도하게 섭취한 에너지를 몸을 조금 더 움직여 소모하는 방식으로 우리 몸이 설계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식을 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은 심폐기능이 월등히 발달하여 운동 수행 능력이 아주 뛰어난(예를 들어 수영의 팰프스 등) 운동 선수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추위가 극성이다. 하지만 동장군을 지나면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는 봄이 다가올 것이다. 멋진 몸으로 봄, 그리고 여름을 맞이할 바람직한 다이어트 식습관에 대해 다음 호에서 알아보자.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