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유럽을 들었다 놨다한 커다란 민족 이동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 민족의 이동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킹인 노르만족의 이동이다. 물론 훈족이나 몽고의 침략으로 서쪽으로 유럽 민족이 이동한 것을 더한다면 많아지겠지만.

바이킹(Vikings; 노르웨이/ 덴마크어: Vikinger, 스웨덴/ 뉘노르스크/ 아이슬란드어: Vikingar)의 혈통은 게르만족 노르드인이고, 언어는 노르드어를 구사하며, 스칸디나비아의 본토에서 항해하여 8세기 말~11세기 말까지 북 유럽과 중앙 유럽을 약탈 및 교역하며 활보한 해상족을 지칭한다. 바이킹의 활동 시기를 바이킹 시대라고 한다.

노르드인들의 인구 팽창과 군사적 상업적 성장은 중세 스칸디나비아뿐 아니라 유럽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수한 건조술로 탄생한 롱쉽과 앞선 항해술로 이들은 지중해 연안, 북 아프리카, 중동, 중앙 아시아까지 약탈과 무역을 했다. 탐험과 식민의 시기 후 이들은 북서 유럽, 러시아, 북대서양 섬, 북아프리카 북동 해안 등에 정착했다. 이 시기에 이들 문화와 외래 문화간 교류로 서로 영향을 받았다. 앵글로색슨 전기에 나타난 789년 Portland 습격이 이들의 최초 약탈 기록이고, 793년 잉글랜드 동쪽 해안 Lindisfarne 수도원이 약탈당한 기록이 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해안이 바이킹 영향권에 들어갔고 잉글랜드 대부분을 바이킹(데인족)이 지배했다. 9세기 초 이들은 롱쉽으로 프랑스 론 및 센 강 등 내륙 수로를 따라 침략했다.

샤를 3세 때(898년 ~ 922년)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 롤로와 덴마크 출신 베른하르트의 노르만족이 센 강 하류 양안에 정착하며 이름이 노르망디가 되었다. 덴마크 출신 바이킹들은 프리슬란트, 프랑스, 잉글랜드 남쪽에 진출했는데, 1013~1016년에 크누트 대왕이 잉글랜드 왕에 올랐다. 스웨덴 출신 바이킹들은 동쪽 발트족과 슬라브족의 땅(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 진출해 루리크가 최초의 슬라브 국가를 건설했고, 이 지역 강을 따라 흑해, 비잔티움 제국에까지 진출했다.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들은 주로 북서쪽의 페로 제도, 셰틀랜드 제도, 오크니 제도, 아일랜드, 영국 북부와 아이슬란드에 진출했다. 붉은 에이리크는 그린란드를 발견해 정착했고, 1000년경 비아르니 헤리올프손이 북미를 발견했다. 붉은 에이리크의 아들 레이프 에이릭손과 토르핀 칼세프니가 그린란드로부터 정착을 시도해 Vinland라 불렀다. 뉴펀들랜드 섬 북쪽 반도의 랑스 오 메도즈 근처에 정착촌이 개척되었지만 원주민들과의 마찰과 기후 변화로 몇 세대 만에 끝났다. 바이킹 해외 진출의 최 절정기에 북반구가 수백 년 동안 혹독한 소빙하가 시작되어 그린란드의 식민지는 몇 백년만에 몰락했고 바이킹의 서부 진출도 멈추며 이들의 본토도 타격을 받았다.

유럽의 바다와 강을 주무른 용감한 야만족 ‘바이킹(Vikings)’은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Vikings’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첫번째 설은, ‘viking’이 고대 노르드어 비킹그(víkingr)’에서 유래되었는데, 고 노르드어 여성형 ‘vík(작은 만, 후미)’에 접미사 ‘-ing(자주 나타나는 사람)’이 합성된 단어다. 따라서 ‘작은 만의 거주자’,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카테가트만의 Viken 출신 사람’을 의미했고, 일반적으로 바이킹이 중세 초기 스칸디나비안 사람들을 지칭한 것은 근래 몇 세기 전이다. 하지만 이 이론에 이의가 있다. 고 노르드 문서에는 비켄 사람을 ‘바이킹’이 아닌 ‘víkverir(비크의 거주자)’라 칭했다. 게다가 이 표현은 남성만을 지칭하고 여성형은 무시된다. ‘vikingr’는 스웨덴의 룬문자 금석문에도 나타난다. 두번째 설은, 게르만 조어 ‘wîkan(멀어지다)’이 변한 ‘weik/ wîk’에서 유래한 노르드어 ‘vika(해리, sea mile)’에서 ‘바이킹’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세번째 설은, 1070년경 Adam of Bremen이 쓴 ‘Hamburg-Bremen의 대주교 역사’에서 ‘wicing’이 나오는데, 스칸디나비안의 해적, 침입자를 지칭했다. 고 노르드어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문화를 지칭하지 않았고, 중세 영어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고대 영어 ‘wīcing 은 1076년 편집된 고대 앵글로색슨어 시 "Widsith"에 처음 나타난다. 라틴어 ‘vic(마을)’에서 유래한 고대 영어 ‘wíc’이 ‘wicing’으로 변형된 다음 ‘Viking’이 됐다는 설이다. 유사한 설로는, 아이스랜드인 Örnolfur Kristjansson은 “Widsith”의 ‘wicinga cynn<Jórvík(York) 사람>’에서 유래된 ‘Jór-Wicings’이 ‘바이킹’의 어원이라 주장한다. 이미 고대 영어 ‘wīcing’과 고대 프리시안어 ‘witsing/ wising’이 있었지만 중세 영어 때 고 노르드어 ‘víkingr’에서 유래한 ‘víking’을 차용하고 19세기 새롭게 변형되어 ‘viking’으로 최종 정착되었다. 네번째 설은 ‘avviker(떠나다)’가  ‘바이킹’의 어원이라는 설로 ‘고향을 떠나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지칭한다.

‘고결한 야만족 전사’인 영웅으로 낭만화시킨 ‘viking’은 18세기 근대 영어에 유입되었다. 스웨덴 작가 얀 기유(Jan Guillou)는 “바이킹이 긍정 의미가 된 것은 1800년대 초 예이예르(Erik Gustaf Geijer)의 시〈The Viking〉출간 이후다”라 했다. 1809년 스웨덴이 러시아에게 핀란드를 잃자 민족의 자신감 회복을 위해 영광스런 과거사 재창조가 필요했다. 예이예르가 회원인 예타회(Geatish Society)는 작품으로 바이킹을 용감하고 호전적 해양 전사 이미지로 만들었다. 바이킹은 독일인들에게 ‘Ascomanni(ashmen)’, 게일인들에게는 ‘Lochlannach(lake person)’, 앵글로-색슨인들에게는 ‘Dene’, 슬라브족, 아랍과 비잔틴 사람들에게는 ‘Rus’나 “Rhōs’로 알려졌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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