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위해] 자신이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 어디로 떠나야 할지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받은 분양권을 팔든, 청산자가 되어 조합에 전 재산을 넘기고 떠나든 어디론가 가야 한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다시 들어와 살 자 역시 몇 년은 떠나 있어야 한다. 다이어트 칼럼에 웬 재개발 얘기? 하시겠지만 이 재개발이란 것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휴유 장애나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이 어렵다. 특히 재개발은 다이어트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원인임이 확실하다. 재개발이 대박이란 인식이 있으니 주위에 밥을 사야함은 물론이거니와 찬성, 반대자들 간 모임이 빈번하니 술 먹고 돌아다닐 일이 허다하다.

십 몇 년 전 그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에 의해 지정된 증산 뉴타운은 드디어 올 초 필자의 서울 생활 33년을 억지로 밀어낸 계기가 되었다. 재개발 권역에 회사 건물과 살던 집이 모두 포함되었으니 필자는 정리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토를 마련하고 직원들 출, 퇴근 문제를 해결하며, 쌍둥이를 데리고 살 집을 찾아야 한다. 게다가 청산자인 필자는 조합을 상대로 소송해야 하는 등, 예기치 못한 문제가 수시로 터지는데 정작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굵직한 문제들 틈에 끼었다 슬그머니 나타나 필자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중2 쌍둥이들의 전학 문제였다. 큰놈이 전학이 싫다며 몇 날을 징징거리고 울며 보채는 것이다. 요는 중학교를 마치게 해 달라는 것인데 이미 1차 보상을 받고 조합으로 소유권을 넘긴 터라 불가능했다. 집요한 큰놈은 나름대로 고심을 했는지 인근에 집을 장만하자는 제안을 부모에게 한다.

보상가는 형편없고 인근 집값은 풍선 효과로 뛰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회사까지 옮겨야 하는 필자에게 더 이상 서울에서 회사와 가정을 동시에 꾸리는 것은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힘겹게 일을 마치고 어수선한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댓 발 이상 튀어 나온 아들 녀석의 입이다. 약이 오른 필자가 험한 말을 하고 주먹을 치켜드니 이를 목도한 아내의 눈에 불이 튄다.

아내는 떠나기 싫다는 놈을 편들고 쌍둥이 동생 놈은 아빠 편을 드니 온 집안이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나라 꼴을 방불케 한다. 이러다가 재개발 덕분에 가정 법원 구경까지 하는 것은 아닌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혼쭐이 난 큰 녀석은 재개발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중얼거린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나는 전직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고 끝까지 정부와 정책 편인 아내는 나를 타박하며 말린다. 잠시 앉아 있으니 비커 속 앙금이 가라앉듯 분이 삭는다.

혼줄에 정신이 피곤한지 큰 녀석은 잠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질 않다. 나는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서울에서의 마지막 닭을 주문한다. 아내는 옆에 앉아 그동안 모은 쿠폰을 헤아리고 작은 녀석은 이름도 생소한 감자를 보너스로 먹게 되었다며 좋아라 한다. 둔탁한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치킨과 맥주, 콜라 등이 도착하니 우리 가정은 곧 발랄한 생기를 되찾는다.

큰 녀석은 언제 울었냐는 듯 커다란 닭 다리를 뜯고 있는데 양손에 비닐장갑까지 끼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필자는 큰 녀석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전학 갈 거지?” 올 3월 초 필자는 33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양시 삼송으로 회사 및 집 등 모든 것을 이전하였다. 이사를 마치고 텅 빈 집을 방마다 돌아보니 문득 문득 감회가 새롭다. 곧 재개발로 허물어질 집 벽에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적어 넣었다.

"Let's go to samsong For a better life."

신분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신입 경기 도민들은 몇 달째 적응하며 잘살고 있다. 치킨을 사주고 전학시킨 쌍둥이들은 새로 사귄 친구들을 벌써 집에 데리고 온다. 재개발로 바뀐 삶이 기존보다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두고 볼 일이다.

▲ 박창희 교수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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